문화/생활

요즘 며칠째 4편의 시를 고르느라 끙끙거리고 있다. 고3 학생들에게 외우게 할 시들이다.
이미 학생들이 외운 ‘광야’(이육사), ‘소년’(윤동주), ‘유리창’(정지용), ‘생명의 서’(유치환), ‘님의 침묵’(한용운) 등을 제외하고, 아이들 수준에 맞는 시와 시인을 찾으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시와 시인을 바꾸느라 정신을 못 차리겠다.
조금 전에도 그렇게 시작됐다. “일단 김소월은 무조건 넣어야지! 통일이 된 후에도 여전히 빛날 시인이 바로 소월 아닌가. 그의 시는 우리 배달민족을 하나로 이어줄 영원한 민족정서의 고향이지.”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금세 쩔쩔매게 되었다. 김소월의 시 가운데서 딱 하나만 고른다면? ‘진달래꽃’에 ‘산유화’, ‘초혼’, ‘가는 길’….
숱하게 이어지는 명시들 가운데 한 편만 고르기는 정말 어렵기만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괴로움이 있었다. 이육사의 ‘광야’를 고르자 ‘절정’과 ‘청포도’, ‘꽃’ 등을 제외해야 했고, 윤동주의 ‘소년’을 품자마자 ‘서시’에 ‘참회록’, ‘자화상’, ‘별 헤는 밤’ 등도 버려야 했다.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언제야 4편의 시를 만족스럽게 고를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괴롭지만 즐겁고, 즐겁지만 괴롭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시를 늘 가까이해야 한다. 시는 사고력과 감수성을 이루는 살과 피다.
무엇을 떠올리고, 따져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과 자세를 키우는데 시 외우기 만한 것은 없다. 독서량이 절대 부족한 우리 청소년들에게 시 외우기란 입에 쓴 보약 중의 보약이다.
시는 우리들의 삶을 진정으로 빛나게 만드는 최고의 언어예술이다.
다시 고민하면서 4편의 시를 고르기 시작한다. 일단 좋은 시들을 넉넉하게 주고 그 가운데서 고르게 할까 묘안을 내본다.
내가 무조건 골라주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고를 수 있게 충분한 시의 창고를 열어주자. 시의 창고? 그 밖에 있는 시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1편을 비워놓았다.
지금까지 외운 5편의 시, 그리고 지금 내가 제시하는 시들 가운데 4편,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시를 1편 고르라는 뜻에서다. 무조건 제시되던 시, 일정한 범위에서 자신이 찾는 시, 범위와 무관하게 자신이 직접 찾는 시. 나름대로 단계별로 시 10편 외우기 교육을 펼쳐온 셈이다. 우리들도 암송시 10편을 골라보면 어떨까? 자신이 직접 고른 시들 속에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담기고 키워질 것이다.
글·허병두(숭문고 교사·책따세 공동대표)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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