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6·25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담했고 또 그 아픈 상처는 여전히 한반도를 횡단하며 가슴 저미는 사연들을 품고 있다. 여러 심란했던 사건들과 함께 국가와 가족이 갖는 의미가 새삼 가슴 깊이 스미는 요즘이다. 말로만 외치는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피부로 느끼게 해 주어야 마땅할 생생한 대한민국의 역사.
그 대한민국 역사의 한가운데를 115년의 한국 철도가 함께 달린다.
6월, 때이른 더위에 찾은 국립대전현충원은 마치 거대한 공원처럼 우거진 신록을 벗삼아 드넓게 펼쳐져 있다. 곳곳에서 참배객들의 모습과 함께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호국공원화를 기본 방향으로 조성된 국립대전현충원의 평화로운 경관이 심란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동시에 눈부시게 푸른 신록을 벗삼은 그 고요가 방문자들을 짐짓 숙연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포화를 뚫고 기관차 몰아 ‘딘 소장 구출작전’
현충원 영내 깊숙한 곳에 자리한 호국철도기념관이 그것이다.
나란히 정렬된 묘비 일색의 현충원에 들어선 아담한 증기기관차 모양의 기념관은 겉모습은 놀이공원의 그것처럼 귀엽고 정감이 가지만 안에는 슬프고도 아련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기차 앞머리에 ‘미카3-129호’(등록문화재 415호)를 써 붙인 이 증기기관차는 1940년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제작된 차량이다. ‘미카’는 ‘미카도’의 약자로 ‘황제’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미카3-129호’는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된 텐더식 증기기관차로 부산~신의주 등 주요 간선에서 운행됐다. 1970년대 디젤기관차가 나오기 전까지 30여 년간 운행됐고 1980년대에는 동해남부선 부산~경주 관광열차로 운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미카3-129호’가 현충원에 호국철도기념관의 목적으로 전시된 이유는 6·25전쟁 당시 미군 사단장이었던 윌리엄 F. 딘 소장 구출작전에 실제 투입됐었기 때문이다.

딘 장군 구출작전의 내용은 이렇다. 딘 소장은 6·25전쟁 당시 미 제24사단 사단장으로서 중부전선을 방어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는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밀물처럼 쳐내려오는 인민군 앞에 도저히 승산이 없었던 대전전투에서 새벽부터 바주카포를 들고 인민군 탱크에 맞서 싸우던 중 오후 5시 반 통신이 두절되었다. 그리고 그를 구해 내기 위한 특공작전이 펼쳐졌다.
30명의 미군과 3명의 기관차 승무원으로 구성된 특공대는 아직 아군이 점령하고 있던 이원역에서 김재현 기관사가 모는 ‘미카3-129호’ 증기기관차와 탄수차에 나눠 타고 대전역을 향해 출발했다. 대전역은 이미 적군에게 넘어간 상황으로 대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병력이 피해를 입은 데다 목숨을 건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득 없이 총격전만 이어지자 결국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철수는 쉽지 않았다. 대전역을 떠나 남쪽으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미카’를 향해 인민군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오직 적진을 빠져나가는 방법밖에는 숨을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결국 이 작전에서 대부분의 부대원이 전사하고 김재현 기관사 또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부상을 입은 기관조사(지금의 부기관사)에 의해 ‘미카’는 천신만고 끝에 이원역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62년 집중포화를 받았던 대전~세천 사이 경부선 선로변에는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순직비가 세워졌으며 1983년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현충원(서울 동작동)에 안장됐다. 정부는 1978년 대통령 표창을, 미군은 특별공로훈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6·25전쟁 중 병력·군수물자 수송에 큰 역할
6·25전쟁 당시 철도는 전쟁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잠시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군사작전에 필수적이었던 병력과 군수물자를 신속히 운반하여 승리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또 6·25전쟁 이후에도 철도는 폐허 속에서 국가 재건과 근대화의 대동맥 역할에 기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약 2,500명의 철도직원이 목숨을 잃는 아픔도 감수해야 했다.
‘미카3-129호’를 개조해 만든 호국철도기념관은 대전현충원 내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철도영령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한 철도인과 철도의 발전상을 알리기 위해 2013년 5월 30일 개관했다. 이를 계기로 코레일은 국가보훈대상자 예우문화 확산과 나라사랑정신 고취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 보훈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국철도기념관은 기념관 자체가 하나의 열차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길이 70미터에 폭 3미터로 ‘미카3-129호’ 증기기관차와 객차 2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념관 객차 2량은 각각 6·25전쟁에 참전한 철도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호국관과 1899년 경인선에서부터 KTX에 이르기까지 철도 115년의 발자취를 엿볼수 있는 역사관으로 꾸며져 있다.
호국관은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철도영웅들의 비망록’을 비롯해 ‘757일간의 기록’, ‘미카3-129호와 별이 된 철도영웅’, ‘추모의 벽’ 등으로 구성됐으며, 그 안에는 6·25전쟁 당시 철도인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특히 ‘딘 소장 열차구출작전’에 직접 참가했던 고(故) 김재현 기관사, 철도참전용사 이동진·김노한 기관사의 사진과 군수물자, 우편물, 피난물 운송, 포로 수송 등의 다양한 영상자료가 최초로 공개·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또 역사관은 ▶철도 위인과 명예로운 철도인을 소개하는 ‘철도와 함께한 사람들’ ▶경인선 개통부터 최신 KTX산천까지 각종 열차의 속도 비교 ▶열차 모형과 대륙철도로 뻗어나가는 한국철도 발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한국철도 기적의 발자취’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관광열차를 소개하는 ‘철길 따라 떠나는 여행’ ▶‘철도 그리고 추억이 있는 풍경’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철도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철도는 1899년 철도 개통 이래 공무 수행 중 약 2,500여 명이 순직하는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 특히 6·25전쟁 당시에는 철도직원의 약 67퍼센트인 1만9,300여 명의 철도직원이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돼 병력과 군수물자, 피난민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 중 287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영웅인 전 육군참모총장 백선엽 장군의 인터뷰에서도 6·25전쟁 승전에 기여한 철도의 중추적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백 장군은 “6·25전쟁 때에는 철도에 종사하는 분 약 2만명이 일선에 있는 군인과 같이 전장에 나와 함께하면서 피난민 수송, 군대 수송,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수송과 물자 수송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만약 철도가 없었더라면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자긍심과 소명으로 국민행복의 동반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철도인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철도가 있다”며 “선배 철도인의 나라사랑의 참뜻을 다시 한 번 새겨 코레일 전 임직원이 국민생명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긍심과 소명으로 국민행복의 동반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 발 철도가 단지 물자와 인력 수송 역할에 그치지 않고 6·25전쟁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새삼 뿌듯함이 밀려온다. 단란하게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차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철도역사의 현장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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