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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김창엽의 생활정보]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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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헤헤헤~, 우헤헤헤~.” 주부 최 씨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인 딸 둘을 뒀다. 최 씨의 두 딸은 유난히 서로 간지럼 태우기를 좋아한다. 자매끼리인데다 보통 웃음이 그치지 않는 장난이어서 최 씨는 구태여 딸들의 ‘간지럼 놀이’를 말리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두 딸의 간지럼 놀이가 항상 좋은 결말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얼마 전에는 간지럼 장난이 길어지자 5학년인 큰딸이 “그만하란 말이야”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딸들의 간지럼 놀이가 가끔씩 싸움으로 결말이 나는 것을 최 씨는 상관하지 않는다. 간지럼 장난이 아니더라도 놀다가 싸우는 일이야 어린 나이에는 흔한 까닭이다. 정작 최 씨가 신경 쓰는 건 간지럼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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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간지럼은 자극에 반응하는 인체의 미묘한 특성이 압축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간지럼의 메커니즘은 심오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단순치 않은 데다, 현대과학조차도 충분히 그 면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간지럼은 스스로 태울 수 없다.

아무리 간지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타인의 손길만이 간지럼을 유발한다. 게다가 간지럼 타는 부위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주로 은밀한 곳, 노출이 평소 덜 되는 신체 부위가 간지럼의 타깃이다. 무릎 근처나 팔뚝 같은 데는 여간해서는 간지러운 느낌이 유발되지 않는다. 또 평소 간지럼을 타는 부위더라도 자극이 다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겨드랑이를 살살 간지럼 태우지 않고, 세게 문지르거나 찰싹 때리거나 혹은 압박하면 간지럼 대신 통증이 오게 마련이다. 간지럼과 불가분 동반돼 나타나는 반응은 웃음이다. 한데 왜 웃는지를 현대과학조차도 명쾌하게 규명해 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간지럼의 대략적인 얼개는 파악돼 있다. 간지럼에는 최소 2개의 뇌 부위가 연관돼 있다. 하나는 ‘터치’에 대한 압력을 느끼는 부위이다. 살짝 간질이는 것인지, 찰싹 때리는 건지, 박박 문지르는 것인지를 구분해 내는 데는 대뇌의 피질 부위가 관여한다. 또 하나는 좋은 기분을 관장하는 대뇌부위이다. 간지럼을 태우면 웃음 반응이 나오는 것은 신경학적으로 이런 대뇌 부위가 관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이 아닌 나 자신이 간지럼을 태우면 왜 간지럽지도, 나아가 웃음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뇌가 처리하는 자극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나의 목 주변을 간질이기로 했다고 하면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한 정보가 대뇌와 소뇌에 각각 전달된다. 몸은 예상된 행위, 즉 이미 내가 하려 했던 행동으로 판명하고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이 내 목을 간질이려 들면 그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소뇌에 있을 리 만무하다. 이때 우리의 두뇌는 간지럼을 느끼고 급기야 웃는 반응을 한다.

한데 하필이면 왜 웃을까? 신경학자들과 심리학자들 가운데는 간지럼에 웃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사회성 행동’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웃음이 일종의 복종의 표시라는 것이다. 복종으로 해석되는 주된 이유는 간지럼이 주로 공격에 취약한 인체 부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다. 실제로 겨드랑이나 목 등은 다치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부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간지럼 태우기는 가장 부드러운 공격 행위의 일종인데, 이에 대해 웃음으로 반응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간지럼은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가 유아 등 어린 자녀를 상대로도 드물지 않게 시도하는 행위이다. 웃음 반응을 동반한다고는 하지만 간지럼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뇌신경의 소모가 예상 외로 크게 동반되는 자극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혹자는 이런 이유로 간지럼이 두뇌 발달을 돕는다고도 주장한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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