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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북한산 품에 안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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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꽃이 활짝 피어 봄 성에 가득하고, 온갖 꽃들은 바야흐로 화창하게 피어나네. 시절이 좋구나, 벗님들이여, 산천 경지를 구경가세.”

이렇게 시작하는 조선 후기 잡가(雜歌) <유산가(遊山歌)>가 자연스레 떠오르며 흥을 지피는 시절이다. “대나무 지팡이에 미투리 신발을 신고 허리춤에 바가지 하나 꿰어 차고 천리 강산 구경을 들어가 보니, 산 가득히 붉은 꽃 푸른 잎사귀들은 일 년에 다시 한 번 피어나서 제 색깔을 자랑하는데, 푸른 소나무 비취빛 대나무는 울울창창하며 이상한 꽃 상서로운 풀이 난만하게 피어난 사이에 꽃 속에 든 나비는 자취없이 날아간다.”

겨우내 녹색 굶주림에 시달리던 선인들은 봄을 맞아 피어난 녹색을 만끽하며 이렇게 노래했던 것이다. 녹색이 꽃을 피게 하고, 꽃이 또한 녹색을 난만하게 하는 봄이면 아무래도 산놀이(遊山)가 제격이었을 터이다.

“먼산으로 첩첩이 보이는 큰산은 주춤하여 기암은 층층으로 솟구치고 커다란 소나무는 낙락으로 허리 구부러져 미친 듯 부는 바람에 흥을 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 층암절벽상의 폭포 물은 콸콸 수렴발을 드리운 듯, 이 계곡 물이 수루루루룩 저 계곡 물이 솰솰, …(중략)…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 백옥같이 흩어진다.”

이 봄에는 이 땅 어느 산에 가더라도 옛 <유산가>의 정취를 만끽하게 된다. 며칠 전 북한산 팔각정에 올랐다. 미세먼지도 잠시 쉬어 가던 화창한 봄날 오후였다. 차 한 잔 앞에 놓고 사방을 굽어보니 세상 근심 멀어지며 시나브로 <유산가>가 떠오른다. 보현봉·승가봉·형제봉 등 크고 작은 북한산 봉우리들이 저마다 찬연한 녹색을 뽐낸다. 그 봉우리들이 서로 다투듯 손짓하여 부른다. 남쪽으로 남산과 한강이 보인다.

더 내려가면, 눈길은 순간 지리산 천왕봉까지 내달린다.

몇 년 전 남원 광한루원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바라보다 지리산에 취한 적이 있다. 아슴아슴한 운해 위에 떠 있는 듯 노고단이며 반야봉이 섬처럼 둥둥 떠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 위로 새봄 햇살이 살포시 내려 비치니 과연 영산(靈山)다운 자태가 절로 났다. 그 남악의 영산은 어서 오라 손짓하여 나를 초대했다. 그것은 차라리 황홀한 환대였다.

지리산의 봄은 봉긋이 솟아오르는 철쭉 봉오리로부터 움튼다. 하여 노고단이나 세석평전에 만발한 철쭉꽃으로 봄의 절정을 이룬다. 초대에 응한 내게 지리산이 주었던 영롱한 선물이 바로 예의 철쭉 꽃다발이었다. 50여 만평에 걸쳐 펼쳐져 있는 세석평전의 철쭉꽃 향연을 보고 그때 나는 그 어떤 현묘한 표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선승의 화두처럼 “꽃은 꽃이고 길은 길이로다”, 뭐 그런 말들만 연발했을 뿐이다.

그 철쭉꽃 절정 너머로 반야봉의 기개가 참으로 장대했다. 나아가 철쭉 향기와 더불어 천왕봉은 우뚝 하늘로 치솟아오를 기세 한 가지였다. 그 황홀경 앞에서 나는 우주의 진리며 생명의 섭리를 헤아리며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라도 그렇지 않으랴. 그래 녹색 기갈에서 해갈되기 좋은 이 봄에는 그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문득 멀리서 바람처럼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청량한 환각일까. 그 소리에 눈이 다시 떠진다. 북한산. 다닐 때마다 색다른 풍경으로 나를 환대했던 그 가까운 명산을 앞에 놓고 지리산 타령을 한 것이 갑자기 미안해진다. 언제라도 마음이 동하면 갈 수 있는 여기의 북한산과, 큰마음 먹어야 겨우 이를 수 있는 거기 지리산의 차이였을까.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내일, 거기’에 대한 동경으로 오늘을 결여와 결핍으로 소진한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렇게 반성하며 다시 북한산 품에 안겨버린 오후였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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