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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이야기] 왜선 겨냥한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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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명량>의 흥행 열기가 대단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깊은 감동을 줬고, 일본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는 함선과 조선 수군의 장렬한 모습 또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진왜란 하면 흔히 거북선을 떠올리지만 사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은 판옥선(板屋船)이었다.

판옥선의 ‘판옥’은 ‘판자로 만든 집’이라는 뜻으로, 1550년 명종 때 을묘왜란이 일어나자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왜구들은 주로 배에 기어올라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왜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배가 필요했다. 판옥선의 갑판은 2층으로 만들어졌고 적들이 뛰어들기 어려웠다.

노를 젓는 병사들은 1층 갑판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으며, 전투하는 병사들은 2층 갑판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총포와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갑판 가운데는 높은 장대(將臺)가 있어 장수가 이곳에서 지휘할 수 있었다. 판옥선에는 모두 164명의 수군이 탔으며, 지휘선인 판옥대선에는 수많은 깃발을 꽂아 다른 배들에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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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은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발한 함선이었다. “앞에 용머리를 만들어놓아 그 입에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송곳을 박았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 비록 적선 수백 척이 있더라도 그 가운데로 돌진해서 대포를 쏠 수 있다”는 기록처럼 판옥선 위에 거북 등 모양의 지붕을 씌운 배로, 철갑을 덮고 송곳을 꽂아 적군이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 용머리에서는 유황이나 염초를 태워 연기를 뿜어 적의 대열을 혼란시켰다.

일본 군선과 비교했을 때 거북선과 판옥선의 우수성은 무엇일까?

우선 배를 만든 재료와 방법이 일본 군선과 달랐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소나무를 두껍게 잘라 만들었다. 소나무는 목질이 질기고 강했으며,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이어 붙일 때는 홈이나 구멍을 깍지에 끼워맞추고, 약한 곳은 꺾쇠로 단단히 조였다. 이에 비해 일본의 안택선과 관선은 삼나무나 전나무를 얇게 잘라 만들었다. 삼나무나 전나무는 소나무보다 가볍고 목질이 약했으며, 이어 붙일 때는 철제 못을 사용해 차츰 녹이 슬면서 강도가 약해졌다. 그래서 조선 군함과 맞부딪치면 일본 군함은 쉽게 부서졌다.

배의 구조 또한 달랐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몸체가 무겁고 배 밑바닥이 평평해 속도가 느렸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우리나라 남·서해안에 적합했다. 썰물 때 갯벌에 안전하게 정박했고, 방향 전환을 쉽게 할 수 있어 해안이 좁고 섬이 많은 연안지역 전투에 유리했다.

반면에 일본의 함선들은 몸체가 가볍고 바닥이 뾰족해 속도는 빨랐지만 썰물 때 갯벌 위에 좌초할 위험이 컸다. 이외에 판옥선과 거북선은 대포를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고 견고했다. 대포 발사 때 그 반동은 그대로 배의 몸체에 전해진다. 배의 몸체가 약하면 대포의 반동으로도 부서질 위험이 있었다. 판옥선에는 대포 10문을 장착했고, 거북선에는 14문에서 최고 24문까지 대포를 장착할 수 있었다.

일본 군함들은 가벼운 목재로 만들어져 대포를 장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총만으로 공격했다. 조총은 육전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했지만 두꺼운 판자로 만들어진 판옥선을 파괴할 만한 위력은 갖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해상 지리에 밝은 사람들로 해안의 지세를 잘 이용했다.

명량대첩에서 유속이 빠른 조류를 적극 이용하여 13척의 배로 133척 이상의 일본 군선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준비된 장군’ 이순신의 탁월한 전쟁 수행능력과 수군들의 헌신적인 활약, 판옥선과 같은 주력선의 우수성이 함께하면서 임진왜란이라는 우리 역사상 최대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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