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늘 그렇게 느끼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느낄 때가 있지요.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계절이든, 사물이든 어느 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동일한 사태에 대해 다른 느낌이 올라올 때 우리는 고백합니다. 대상을 빛나게 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고. 마음이 요물이고 마음이 신비한 거라고.
사람의 마음 중에 가장 신비한 것,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닮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집착이지요. 사랑이 깊을수록 사물은 진면목을 드러내지만 집착이 깊으면 사물은 왜곡됩니다. 그러나 그 왜곡을 거치지 않고, 집착을 거치지 않고 사랑을 배우는 경우가 없는 걸 보면 진면목의 이면이 왜곡인 거지요.
사랑이 깊으면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원래 하찮은 것은 없는데 우리가 깊이 살지 못하니 세상이, 사물이, 사람이 하찮아 보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5월 첫 주에 석가탄신일이 있네요. 지식인을 만나면 정보가 쌓이지만 현자를 만나면 삶이 바뀐다면서요. 우리가 성탄절, 석가탄신일을 기념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부처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날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을 만나 우리 삶이 바뀌기 때문일 겁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제1 제자가 가섭존자입니다. 염화미소로 유명한 가섭존자의 일화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거지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외로운 거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늘 남의 집 음식찌꺼기를 얻어 먹고 사는 할머니는 스스로 천하다 여겨 구걸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부잣집 하인에게서 쌀뜨물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쌀뜨물은 이미 쉬었습니다. 음식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음식,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음식이었으나 삶을 포기할 수 없으니 먹어야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찌할 도리 없이 쉰 쌀뜨물을 마시려는데, 스님 한 분이 할머니에게 그 음식을 나눠줄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머니는 놀랐습니다. 있는 집에 탁발을 가면 잘 드실 수 있는 분이 무엇 때문에 천한 노인의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나눠달라고 할까요? 조롱당하는 기분마저 드는 찰나에 스님이 말합니다. “딱 한 모금만 나눠주십시오. 그러면 이 굶주린 중생이 그것으로 기운을 차려 선업을 쌓으려 합니다.”
거지 할머니는 어디 보자, 당신이 이 쉰 쌀뜨물을 마실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스님의 발우에 쉰 냄새가 진동하는 쌀뜨물을 부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쌀뜨물을 보시하는 할머니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더니 그 자리에서 천천히 그리고 감사히,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쌀뜨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별거 아닌 것을 별거로 받는 그 스님이 바로 가섭존자입니다. 별거 아닌 것을 감사히 받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서 별거 아닌 것이 별거가 된 것이지요. 자신도 천하다 여긴 음식을 귀하게 받는 스님을 보고 할머니의 삶이 변한 것은 당연합니다. 구걸하며 사는 삶이 천형인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양태가 되고, 세상을 구경하는 자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거지처럼 가난해도 왕처럼 자유로워진 할머니는 구걸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옹색하게 가슴 조이며 사는 인생에서 인생 여행자가 되어 가슴을 펴고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천한 음식이나 귀한 음식이나 차별하지 않고,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차별하지 않고 모두 귀하게 받을 수 있는 가섭존자의 태도 속에 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예전에 박완서 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이 별거더냐, 인생 그 자체인 것을.”
가섭존자야말로 인생을 사랑하는 현자, 인생이 아름다운 현자, ‘사랑이 별거더냐, 인생 그 자체인 것을’이라는 문장에 힘을 줄 수 있는 현자 아니겠습니까.
이주향 |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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