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돌도 늙는다. 아이돌의 노화와 함께 팬심의 형태도 변화한다. 20년쯤 되면 팬심은 일종의 동지애다…. 2011년 열린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 스마프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10대 때 백턴으로 무대를 누볐던 구사나기(초난강)가 백턴을 보여주려 하자 팬들이 말렸다. “다쳐, 하지 마! 하지 마!”
올해 콘서트 중간 토크 시간엔 이런 농담이 오갔다. “저기 3층에 있는 관객들! 우리 이제 노안이 와서 무대 가까이 있는 얘들보다 너희들이 더 잘 보여!” 최고 연장자이자 리더인 나카이 오빠는 격렬한 댄스를 보여준 후 무대에 털썩 드러누워 외쳤다. “다들 즐거워? 난 힘들어 죽겠다고!!!'”
이 문장을 읽다가 이 책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인간적인 아이돌이란 과연 이런 게 아니겠는가! 두루두루 잘난 것 천지이지만 겸손을 떠는 연예인이 아니라, ‘노안 때문에 3층에 있는 너희들이 더 잘 보여!’라고 말하는 늙은 오빠의 발언은 바야흐로 노안의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내게도 깊은 위안을 줬다.
<어쩌다 어른>은 오빠를 가까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자의 꿈을 키웠던 사춘기를 지나 훗날 문화부 기자가 된 이영희의 산문집이다. 가수 신해철을 동경해 철학과에 가더니 철학 박사까지 된 친구, ‘오빠들에게 저런 괴상망측한 옷을 입히다니 참을 수 없다’며 패션에 탐닉하다가 디자이너가 된 친구를 둔 그녀가 말한다. 아이가 아이돌에 빠져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겐 “팬질 한 번 해보렴~” 하고 권유해보라고.
이 책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된 대책 없는 우리의 편견과 생각을 뒤흔든다. 가령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건축학개론’의 카피를 보며 그녀는 말한다. ‘우리 중 인기 있는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첫사랑’이었다고. 문화부 기자답게 ‘우리’ 중 많은 ‘나’는 어느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다!’고 확인사살까지 하며 말이다.
자신을 도통 꾸미려 들지 않는, 이 보기 드문 솔직함은 이 책의 최고 미덕이다. 역설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만이 자책과 자폭 사이를 종횡무진 들락거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의 만화방이 전부 사라지는 시대가 오면, 마지막 만화방 주인이 되어 인생의 빈틈을 메우러 들어온 손님들에게 자장면을 시켜주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며, 어떤 만화를 찾든 3초 안에 알려주는 유능한 만화방 주인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이 그래서 내겐 더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은 이것이었다.
“할 거야. 할 거라고. 이.따.가!”
그녀 역시 나처럼 이 마법 같은 말을 마감 때마다 넘기며 또 한 시절을 버티고 넘어온 거 아닐까.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비빌 언덕은 필요한 법이니까.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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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