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명승지로 꼽히는 계곡을 지척에 끼고 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입지의 촌집. 외관은 보잘것없이 조촐해도 남향 볕이 그대로 쏟아지는 해발 400m에, 지형상 그 앞으로 다른 건물이 들어설 수 없어 영구 조망권이 확보된 자리. 앞마당에 서면 야트막한 앞산이 거친 바람을 물리치고, 에두른 산자락이 ‘좌청룡 우백호’ 격으로 호위하는 기운이 옹골찬 집. 무엇보다도 기특한 것은, 내 통장 잔고를 훤히 꿰뚫어보고 매긴 듯한 겸손한 가격표.
이 집을 만난 것은 2013년 봄의 일이다. 부동산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알겠지만, 2013년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끝도 모를 터널 속을 헤매던 때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바닥인 줄 알지, 당시엔 집값이 더 떨어질 거란 생각에 매매 자체가 쉽지 않았다.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도 덩그러니 집 한 채 있는 게 팔리지 않아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도 그때 나왔다.
그러니 주위의 입 달리고 손 달린 사람들은 죄다 나를 뜯어말렸다. 전세살이 주제에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서울집도 아니고 시골집을 사겠다니, 살 때 생각만 하고 팔 때 생각은 안 한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남들 보기엔 내가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에 현실적인 셈법을 모르는 청맹과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아니, 객지 나와서 월세 내가며 산 세월이 얼마며, 직장 생활로 남의 돈 받아먹은 게 얼만데…. 소월의 시에 빗대 말하자면, 고락에 겨운 입술로 이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할 줄 아는, 나도 그런 여자인 것이다. 축령산 자락을 돌아보다가 벼락 치듯이 꽂힌 마음은 마음이고, 그것이 금전적인, 더군다나 돌이킬 수 없는 실행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세속의 계산법을 통과해야 한다고, 나도 생각했다.
먼저 인근 땅값을 조사했다. 그 집 수준의 조망이 확보되면서 집을 남향으로 앉힐 수 있는 100평 전후의 땅이 비싸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건축비도 어림해보기로 했다. 마침 가까이 지내는 건축기사 어르신이 자네가 집을 짓겠다면 ‘염가 대(大)봉사’를 해주마고 팔을 걷어붙이셨다. 하지만 집을 보고 가격을 들으시더니 한마디로 정리하셨다. “내가 직접 나서도 이 값에는 이런 집 못 지어.”
그러고 보면 수도권 도심의 아파트값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수도권 변두리 산골짜기 집값도 일맥상통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매수한 값에만 내놓는다면 나중에라도 거래가 안 될 리 없다 싶었지만, 염려하는 주위 목소리들을 달래느라 당장 현실에서 얻게 되는 ‘비용 대비 편익’ 분석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집값에 해당하는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한 달에 이자가 얼마쯤 발생하는데, 매주 이틀씩 휴양림에 다니면 달마다 8일간 숙박비가 얼마며, 게다가 휴가철에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논리로 이 선택의 경제적 타당성을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의문이 왜 그렇게 휴양림에 자주 가야만 하느냐일 텐데, 당시에는 때마침(?) 건강이 아슬아슬했고 휴양림은 하룻밤 자기만 해도 혈압이 뚝 떨어지는 마법의 치유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해서 남양주시 수동면 비금리의 작은 집이 내 소유가 됐다. 어느 창문으로 봐도 한 폭의 산수화가 눈에 들어온다는 점은 예상대로며, 상수원으로 하는 지하수 물맛이 좋아 그냥 마셔도 달고 차를 우리면 감칠맛이 더한다는 점은 뜻밖의 기쁨이었다. 정말로 예상치 못한 덤은 ‘감각의 공백’이다. 도시가 아니라 시골 읍내에만 살아도 경험할 수 없는, 완벽하게 고요한 까만 밤이 여기에는 있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산은 더 어둡고, 풀벌레 소리가 하늘에 총총한 별과 어우러져 마치 별의 깜빡임을 소리로 치환한 듯이 귓등을 때린다. 그런 밤에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아 있노라면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잊을 것만 같다. 의식이 한없이 투명해져서 전생의 전생까지도 훤히 보일 것만 같다.
2013년에 집을 팔고 가신 할머니는 “그 집이 부자 되는 집이라오. 나도 그 집에 사는 동안 당첨돼서 돈 벌고 나가거든” 하고 내게 덕담을 하셨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지명이 대기업이 입주한다고 몇 년째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그 유명한 ‘마곡’이다. 누군가가 이 집 팔아서 마곡 들어갈 때 나는 좋아라고 이 집을 샀구나, 하고 요즘도 종종 웃는다. 내가 그 할머니 못잖은 수익을 누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여기면서.
김은하 | 칼럼니스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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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