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시작은 타이베이에서였다. 타오위안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어떡하나. 본능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버스정류장 한구석에 세워놓은 우산 서너 개가 보였다. 버리고 간 걸 보니 상태가 온전치는 않겠지만, 부러진 우산이든 찢어진 우산이든 대수랴 싶었다.
그런데 웬걸,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도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금세라도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 우산을 찾으려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벌컥 화라도 내면 곤란한데……. 이런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하지만 끝끝내 우산을 손에 꼭 쥔 채로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 버스가 올 때까지도 우산 임자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는 우산의 새로운 소유주가 되어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그 작은 검정색 3단 우산 덕분에 나는 타이베이에서 맞은 첫날,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면했다.
그렇다면 멀쩡한 우산 서너 개가 공항터미널에 다소곳이 놓여 있던 사연은 무엇일까. 호텔 침대에 누워서도 추리는 이어졌다. 오라, 우산을 쓰고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놓고 간 모양이다. 출국이 코앞이라 자기네들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비가 계속 내리니 막 입국한 여행자들 중에는 필요한 사람이 있겠거니 해서 한구석에 모아두었나 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익명의 친절에 유쾌해졌다. 나도 필요한 때까지 잘 쓰다가 어딘가에(예컨대 공항에) 다음 사람이 쓰도록 놓고 가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나를 위해(그게 꼭 나를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우산을 남겨놓은 그 누군가의 선의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리라.
비가 잦은 타이베이에서 작은 검정색 3단 우산은 내 여행 파트너가 되었다. 그런데 한 번 우산에 꽂힌 사람 눈에는 온통 우산만 보인다. 그 바람에 타이베이를 자주 여행하면서도 몰랐던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는데, 그것은 여기가 우산을 암암리(?)에 나눠 쓰는 가벼운 ‘우산 공유제’ 사회라는 점이었다.
그 전까지 음식점이나 꽃집, 마사지 숍, 편의점 등 가게 입구에 으레 있는 우산꽂이에 빼곡하게 찬 우산들을 보면서도 나는 그게 모두 용무를 마친 우산 주인이 도로 챙겨갈 목적으로 놓아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물론 일부는 그렇다). 하지만 며칠 관찰해보니, 길을 걷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가게 앞에 있는 우산을 쓱 가져간다. 그런가 하면 볼일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손님도 날이 갰다면 굳이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우산이란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어쩌느냐고? 그제서 아무 가게나 가서 그 입구에 마련돼 있는 우산꽂이에서 우산 하나를 쓱 뽑아 쓰면 그만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짐스럽게 우산을 갖고 다닐 필요도 없고, 우산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1초도 길다. 나는 곧바로 이 선진화된 소유 방식을 실천했다. 그 결과 나의 작은 검정색 3단 우산은 어느 순간 갈색 체크무늬 장우산으로 바뀌었고, 타이베이를 떠날 즈음에는 하늘색 땡땡이무늬 2단 우산이 되었다. 이 우산은 다음 여행지인 도쿄까지 나와 함께했다. 도쿄에 도착하는 날,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색 땡땡이무늬 2단 우산은 도쿄의 게스트하우스까지 여정을 함께한 후 나와 작별했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도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우산 공유제’가 잘 시행되고 있는 곳이다. 타이베이 못잖게 연중 비가 잦은 데다가 일본인 특유의 정직성과 대도시의 합리적인 정서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짐작해본다. 우려와는 달리, 우산을 제 것보다 나은 것으로 바꿈질하는 사람도 없고, 시중에 돌아다니는 우산을 죄다 가져가서 사유화하려는 불순한 컬렉터도 없다.
여기에 하나 더. 우산에 대한 도쿄의 미학을 빼놓을 수 없다. 도쿄에서 우산은 마치 교복처럼 단일화돼 있다. 거개가 까만색이나 하얀색 살대에 투명한 비닐을 씌운 것 일색이다. 오늘은 여성스러운 원피스 차림이니 러플 달린 핑크 우산이야, 나는 상갓집에 가니 까만 우산을 들어야 해, 식으로 복잡다단한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 무심한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얼굴 없는 친절과 묘하게 어우러져, 비 온 다음 날 하늘빛처럼 투명한 맛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음알음으로 나누는 끈끈한 정 같은 것은 없다. 대신에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부담스러운 헌신의 드라마도 없다. 유쾌한 나눔과 공유만 있다. 이런 게 IT시대에 걸맞은 이지적이고 스마트한 친절의 풍속이 아닐까. 나는 그 투명한 여운을 음미하며 생각해본다. 그리고 연중 비가 잦은 나라와는 애초에 입장이 다르지만, 우리도 장마철만이라도 시도해볼 수는 없을까, 바라본다. 요컨대 탈(脫)소유의 실험이다. 그러고 보니 장마철이 머지않았다.
구승준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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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