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정복군주 근초고왕이 바라본 연평도




드라마 ‘근초고왕’이 인기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정복군주 ‘근초고왕’(近肖古王, 13대, 재위 346~375)의 초반 일생은 기록의 부재 때문에 영원히 어둠 속에 남아있다. 왕위에 즉위한 이후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근초고왕과 그의 아버지로 기록된 비류왕(比流王)과의 관계도 명확하지 못하고, 그의 부인이 진씨(眞氏)라는 점, 그녀의 집안이 권세가라는 점 외에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즉위 초반 18년 동안 완전히 백지상태나 다름없다. 근초고왕이 즉위 초반의 불행하고 좋지 않은 기억을 마치 삭제라도 한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년 전성기는 기록에 남았다. 그것도 한국·중국·일본 3국의 기록 모두에 말이다. 이는 앞서 주목받지도 못했던 그의등장에 당시 동아시아 세계가 놀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은 마한(馬韓)을 정복하여 그 영토가 전라도 남해안 일대까지 미쳤고, 동시에 낙동강 유역에도 진출하여 가야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나아가 북쪽으로 대방군(황해도) 땅으로 진출하여 이 지역을 한발 먼저 점령한 강국 고구려와 격돌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근초고왕은 위대한 정복군주였다.
 

하지만 영토 확장만으로 그를 위대한 군주라 보는 시각은 잘못된 평가다. 무익한 전쟁은 나라를 망하게도 한다. 그가 위대한 것은 전쟁이 국가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69년 가을, 고구려군 2만명이 치양(황해도 연백)에 들어와 진을 치고 약탈을 시작했다. 곡식과 재물을 강탈하고 반항하는 남정네들은 죽이고 여인네들은 폭행했다. 소식을 접한 근초고왕은 아들 근구수와 휘하의 병력을 보냈다.
 

“약탈은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 특효약이지만 그 순간 기강이 엉망이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약탈에 정신이 팔려 흩어진 고구려 군대를 급습하라!”
 

지름길로 접어든 근구수와 그의 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목격한 것은 오합지졸이었다. 백제군의 급습으로 고구려군 1만 이상이 도주하고 5천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근초고왕은 포로가 된 자들을 노비로 만들어 장군들과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근초고왕에게는 과시였지만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에게는 치욕이었다. 371년, 고국원왕은 다시 군대를 소집했다. 진군하던 고구려 군대는 패하(貝河·예성강)에서 근초고왕이 매복 시켜 놓은 백제군에게 걸려 많은 병력을 잃고 평양성으로 철수했다. 분노한 고국원왕은 다시 군대를 모아 반걸양(배천)에서 황색깃발을 든 백제군과 대진했다.
 

백제는 고구려 군대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사유’라는 사람이 정보를 제공했다. “고구려군은 군사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숫자만 채운 것입니다. 날쌔고 용감한 병사들은 오직 붉은 깃발을 든 부대뿐입니다.”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는 작전을 금방 짤 수 있었다. 휘하의 장군 막고(莫古)는 붉은 깃발의 고구려 부대에 집중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고국원왕은 “악!” 하고 놀랐다. 붉은 깃발의 부대가 격파되니 다른 부대는 흩어져 달아나기 바빴다. 백제군은 추격하여 학살을 시작했다. 현재의 황해도 배천에서 신계에 이르기까지 고구려군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고국원왕은 힘없이 평양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근초고왕은 여유를 주지 않았다. 고구려군이 다시 보강되기 전에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고 했다. 그해 겨울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와 함께 병력 3만을 동원하여 평양성으로 향했다. 백제군에게 둘러싸인 평양성은 언제 한 곳이 뚫려 함락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전투가 한창이던 순간 노인이 된 고국원왕은 성(城) 안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군사들을 독려했다.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발이 고국원왕을 맞혔고, 그는 세상을 떴다. 371년 겨울 10월 23일(음력)이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4세기 중·후반 황해도를 두고 국왕이 전사할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이유에 대해 말해야겠다. 4세기 초 5종의 오랑캐들-오호(五胡): 흉노(匈奴), 갈( ), 선비(鮮卑), 저( ), 강(羌)-이 북중국을 차지했다. 북중국이란 어항은 모두 육식성고기들만 있었다.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무정부 상태가 되자 한반도에 있던 그 식민지 낙랑·대방군이 무너졌다(313년).
 


황해도는 삼국지(三國志)시대 중국 지방정권인 요동(遼東)의 공손씨(公孫氏)가 대방군을 설치한 곳이다. 여기서 남쪽의 삼한은 물론 일본열도 및 남중국과 해상무역을 했다. 대방군은 7개 행정 단위의 현을 거느리고 있었고, 4천9백호에 2만5천명 이상의 사람이 살았다.
 

황해도는 남중국에서 북중국으로 가는 항로의 중요한 기항지였다. 남중국에서 북중국으로의 해안선을 따라가는 연안 항해는 물길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남중국에서 북중국 으로 가는 배는 한반도 남쪽으로 접근해 백제의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야안전했다. 황해도 서쪽 끝에서 바다를 통해 중국 산동이나 요동으로 갈 수 있었다. 황해도를 둘러싼 전쟁의 승패는 백제에서 중국을 오가는 항로확보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남조와 북조를 오가는 항로의 확보이기도 했다. 근초고왕에게는 과거 공손씨의 대방군이 누려온 ‘동아 지중해’ 해상무역을 독점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앞서 일본열도와 교역의 물꼬를 트고자 했다. 지금의 경상도 낙동강 서쪽 지역에 가야연맹이 있었다. 그 가야소국 중 하나인 탁순국(卓淳國)은 낙랑·대방군의 멸망 후 일본열도와의 접촉 창구였다.
 

366년, 근초고왕은 그곳에 장군 막고 등을 사신으로 보낸다. 일행은 서해안을 남하하여 남해안에서 동쪽으로 갔다. 수많은 섬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다. 배는 남해안 어느 어귀에 도달했고, 일행은 육지에 내려 탁순국 관리들의 안내를 받았다. 성문을 지나 거대한 집으로 들어갔다.
 

백제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탁순국왕 한기말금(旱岐末錦)이 대청에 앉아 있었다. 막고가 말을 꺼냈다. “저희 근초고왕께서는 왜국과 교역을 원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왜국과 통하는 길을 알려준다면 우리 왕께서 크게 후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백제에 일본열도에 대한 중개무역권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탁순국왕을 엄습했지만 백제왕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2년 후 왜국 사신이 백제의 수도로 왔다. 왜의 사신은 선물을 받았다. 5색의 비단 각각 한 필과 뿔로 만든 활, 그리고 철덩어리(鐵鋌) 40개였다. 근초고왕은 왜국의 사자에게 세일즈 외교를 했다. “진귀한 보물이 많아요. 돌아가시거든 우리가 귀국과 교역을 원하고 있다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중국에서 수입한 사치품을 모아 놓은 백제왕궁 창고의 문을 열었다. 왜국의 사신이 감탄했다.
 

근초고왕은 전라도 서남해안 지역(마한)을 장악하여 수도인 한성(서울지역)에서 서남해안으로 가는 항로를 열어 가야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일본열도와 교역의 선이 닿았다. 하지만 고구려로부터 황해도를 탈취하여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열어야했다. 그래야 일본열도에서 원하는 중국산 사치품을 대량 수입하여 중개무역의 거리(巨利)를 얻을 수 있었다.
 

371년, 평양에서 고구려 국왕이 전사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고구려를 지나 중국 전역에 삼한(三韓)을 지나 일본열도에까지 퍼졌다. 백제의 헤게모니 장악은 대중국 항로의 안전을 보장했다. 이듬해 근초고왕은 양자강 남의 동진(東晋)에 사신을 보냈고(삼국사기), 황제(簡文帝)에게 진동장군영낙랑태수(鎭東將軍領樂浪太守)의 작호를 받았다.
 

동진은 근초고왕에게 과거 낙랑군의 역할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조공무역을 허락했다. 남중국의 화려한 사치품이 다량으로 백제에 쏟아져 들어왔다. 신라, 가야 지역과 일본열도에 있는 수없이 많은 나라가 백제와 교역을 원했다. 근초고왕의 등장으로 백제는 대외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후 군상(軍商) 복합체의 무역강국으로 나라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때가 백제의 최대 전성기로 기록된다.
 

4세기 말 황해도 남단의 항로 확보를 놓고 고구려와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던 근초고왕은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힘은 경제의 중요한 요소이다.’ 중국을 오가던 백제의 배들이 고대에도 바라보고 지나갔을 연평도에 지금 북한의 도발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