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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조지 클루니가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 중인 아내를 탈출시키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오래돼 제목이 생각나진 않지만 꽤나 인상 깊게 본 영화다. 영화 중 주인공 조지 클루니가 아내를 탈출시키기 위해 불법으로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그 와중에 차가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를 추적 중인 경찰이 부서진 차의 범퍼 조각을 감식한 뒤 이렇게 말한다. “범인은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예술가일 것이다.”

경찰은 그 이유로 범인의 차가 친환경 자동차인 토요타의 프리우스라는 점을 들었다. 일반 가솔린차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친환경차를 타는 사람이면 적어도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나는 그 대목을 상당히 인상 깊게 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에서 친환경 자동차를 볼 때마다 가만히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자신의 이웃과 사회를 생각해 가욋돈을 부담하고 친환경차를 몰고 다니는 그들이 한없이 거룩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신형 폭스바겐을 보면서 나는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폭스바겐이 사기를 치다가 들켜 전 세계적으로 판매가 바닥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대박이라는 뉴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악마의 세일’ 운운하며 그들을 욕하기 전에 외려 우리 안의 그 무엇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다.

만일 나와 내 가족이 다칠 수 있는 브레이크가 문제라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택시기사의 재떨이가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농담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음을 이번 사태가 보여준다. 남이야 죽든 살든 나와 내 가족만 좋으면 그뿐이라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지켜보면서 나는 큰 슬픔을 느꼈다.

이기주의

‘행복한 왕자’라는 짤막한 동화가 있다. 어느 늦가을 저녁, 남쪽을 향하던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등에서 잠을 청한다. 불행을 몰랐던 왕자는 죽어서 동상이 돼 높은 곳에 자리 잡게 되자 세상의 온갖 슬픈 일을 지켜보게 된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을 치장한 수많은 보석을 떼어내 그들에게 나눠주게 한다.

제비는 남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얼어 죽는다. 사람들은 한때 마을의 자랑이던 멋진 동상이 보석이 사라진 흉측한 무쇠덩이로 변하자 창피하다며 부숴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하느님이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 즉 제비와 왕자의 심장을 가져오게 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했다는 것이 줄거리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다. 19세기 말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영국 사회의 이기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며 타인에 대한 사랑의 존귀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빅토리아시대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에 만연한 개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추방당해 불행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사후 100여 년 뒤인 1998년 영국 정부가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동상을 건립할 정도로 영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런던에 갈 때마다 트래펄가 광장 한쪽 구석에 있는 와일드의 동상을 찾는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 의식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한다. ‘디지털 노마드(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기술을 이용해 근무하는 사람)’ 개념을 창안한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주의(Altruism)가 미래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 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은 나에게도 재앙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파괴적 에너지가 확산되면서 공동체 사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한국 사회가 나는 점차 두려워진다.

 

·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언론학·매체경영)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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