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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거리에 하얀 눈송이가 날리고 내쉬는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를 때쯤, 뎅그렁 종소리와 함께 겨울 풍경이 하나 둘 만들어진다. 빨간 자선냄비를 끌고 거리에 등장한 구세군의 모습에서 겨울이 새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자선냄비가 거리로 나오고 종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어느새 한 해가 시나브로 저물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구세군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사람들의 온기가 자선냄비를 통해 펄펄 끓게 만들어 얼어붙은 사회를 녹이기 위함이다.

자선냄비는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온기는 오랫동안 간직한다. 코흘리개 꼬마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던져진 동전 한 닢부터, 어르신의 거칠고 투박한 손에서 나온 구겨진 지폐 한장까지 모든 나눔은 사연을 품고 있다. 자선냄비가 전해주는 온기는 뎅그렁 종소리와 함께 널리 퍼져나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때로는 현금과 함께 자선냄비 안에 편지를 담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친구들아, 행복하게 보내. 어려운 친구들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쓴 편지를 남긴 아이, "할머니 없는 아가들에게 전해주세요"라는 부탁을 남긴 중년의 어르신, "7개월 동안 모은 빈 병, 헌 옷, 헌책, 박스 판 돈 10만1000원"을 전해주신 어느 할머니 등이 그 주인공이다.

자선냄비를 거쳐간 모든 손길이 다 아름답고 따뜻하지만, 이런 편지를 건네받으면 마음은 더욱 숙연해진다. 많은 사람들의 온기를 전달하는 심부름꾼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또한 이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는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12월 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갖고 2016년의 거리 모금을 시작했다. 시종식이란 문자 그대로 종을 치며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이날부터 전국 400여 곳에서 5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선냄비 거리모금, 온 국민의 나눔 축제가 펼쳐지게 된다.

1928년 서울에서 848원으로 시작된 자선냄비 모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온정의 규모를 더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을 때도 그 온기는 식지 않았고,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시기에도 온정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자선냄비를 시작하는 마음은 사실 조금 무겁다. 안팎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들 사이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기에, 그온기를 전하는 온정의 손길이 있기에,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종을 흔들며 거리로 나선다.

올해도 자선냄비가 온정으로 펄펄 끓어 넘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기부하는 따뜻한 마음을 만나는 일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기쁨이다. 온기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서 사명감을 느끼며 옷을 고쳐 입는다.

 

김규한

 

글· 김규한(구세군 자선냄비본부 모금본부장)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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