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헤이그는 ‘평화와 정의의 도시’로 불린다. 20세기 초 역사적인 만국평화회의가 열렸고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상설중재재판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헤이그에 대해 불의와 울분의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다. 이준 열사 일행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회의장에 입장하지도 못한 채 망국의 한을 품고 순국한 통한의 땅이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21세기판 만국평화회의’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1907년과 달리 2014년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국은 전임 의장국이며 핵안보 주도국으로 주목을 끌었다. 한국의 위상은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개회식에서 총 58명의 지도자 중 3명이 연설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연사로 나선 것이다.
4개항 핵안보 과제 실현 대책 모색을
한국은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세계평화를 위한 핵안보 리더십을 과시했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은 개막연설에서 4개항의 핵안보 과제를 제시했다. 핵안보·핵군축·핵비확산에 대한 통합적 접근, 핵안보 지역협의체 구성, 국가 간 핵안보 역량 격차 해소, 원전 사이버테러 대응책 강구 등이 그것이다. 이 제안은 핵안보를 핵군축·핵비확산과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핵안보에 대한 개별 국가 책임을 지역 단위로 확대하며, 원전의 안전성을 제고하는 의미가 있다.
둘째, 한국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공동 코뮤니케와 별도로 추가적인 핵안보 이행과 기여를 약속하는 ‘집단공약’ 또는 ‘기프트 바스켓(Gift Basket)’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을 보였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0개의 ‘집단공약’에 참여했다.
셋째, 한국은 제1, 3차 정상회의 개최국인 미국·네덜란드와 더불어 ‘핵안보 이행 강화’ 기프트바스켓을 발표했는데, 이는 핵안보 국제레짐의 집행력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는 중대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현 핵안보 국제레짐의 최대 약점은 핵안보를 개별 국가의 책임으로 보아 강제성과 집행성이 현저히 약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집단공약’에 참여한 35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안하는 각종 핵안보 조치를 실행할 사실상의 의무를 지게 됐다. 또한 이 ‘집단공약’은 향후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핵안보 국제레짐을 만들기 위한 중간 단계로서 의미가 있다.
넷째, 우리의 선진 원자력 과학기술을 제공했다. 예를 들면 한국이 개발한 ‘방사성물질 추적시스템’을 IAEA와 협력해 베트남에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우리가 개발한 고밀도 분말핵연료 제조기술을 고농축우라늄 연구로의 전환사업에 제공했다. 특히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고농축우라늄핵연료의 사용 중단을 위해 필요한 고밀도 분말핵연료 제조기술은 한국 보유 특허기술로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는 2016년 워싱턴 정상회의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핵안보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핵테러와 핵확산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그리고 선도적 중견국으로서 핵안보를 위한 큰 역할과 기여를 기대한다. 사실 한국은 세계적인 통상국가이자 원전대국이며 수출국으로서, 북핵의 최대 피해국으로서 특별한 핵안보 국익과 책무를 동시에 갖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핵안보 국익을 보호하고 동시에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4개 핵안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정부와 전문가 그룹 내에서 핵안보와 핵비확산 역량을 더욱 신장하고, 국제협력도 더욱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글·전봉근(국립외교원 교수·안보통일연구부장)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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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