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2015년 8월 20일, 밖에서 작업을 하는 도중 갑자기 비상령이 떨어져 영문도 모른 채 건물 내부로 대피했다. 병사들이 다 모이자 중대장이 '진돗개 2호'가 발령되었다고 했다. 북한이 포격 도발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포격 도발이 여러 차례 있었기에 우리는 '설마 전쟁이 나겠어' 하며 반신반의하면서도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소대장은 우리에게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전투 복장을 해제하지 말고 총을 24시간 휴대하라고 했다.

비상 상황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나 이동할 때, 심지어 씻을 때도 총을 휴대했다. 물론 잠을 잘 때도 총을 안고 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도 소대 생활관에서 대기하며 TV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던 중 우리 군에서 대응 사격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때문인지 '진돗개 1호'가 발령됐다. 군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가 된 것이다. 진짜로 전쟁이 날 것만 같았다.

집에 전화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마 다른 전우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꾹 참았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후임들을 위로했다.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만약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8월 22일, 북한 측에서 협박을 해왔다. 정해진 시간까지 대북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북방송은 계속됐다. 대북방송을 끄는 순간 우리들은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북방송은 정해진 시간이 넘어서까지 이어졌지만 북한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하지는 않았다. 전면전은커녕 대포 한 발 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회담을 한다고 했다. 8월 23일, 밤새 회담을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다음 날인 8월 24일 오후쯤 진돗개 1호에서 진돗개 2호로 완화됐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앞날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상황을 살피기 위해 뉴스를 보던 중 전역을 연기하는 장병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집에 가고 싶을 텐데 스스로 군에 남아 있겠다니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 뉴스를 본 뒤 우리 동기들은 함께 모여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동기 세존이가 전역 연기를 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자신은 군에 남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연기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전 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만약 전쟁이 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주인공들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는 거 봤냐? 너희들은 절대 죽지 않아. 전쟁이 나면 우리들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점령당하면 우리 가족이 사는 곳도 점령당하게 될 터였다. 그것만은 안 됐다. 내가 죽더라도 그런 일만큼은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비록 나 한 명의 작은 힘이지만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역 연기를 결심했다.

8월 25일, 나와 세존이를 제외한 동기들이 전부 전역했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8월 26일, 드디어 모든 상황이 해제됐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연기했던 전역일인 8월 31일이 다가왔고 모두의 환영 속에 전역을 했다.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때의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지금까지 후회했을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나라를 위해.

 

 이 주의 공감

 

· 김평원 (2015년 전역 연기 장병) 2016.06.06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