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첫 담임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다섯 살 된 내 동생이 종종 교실에 놀러 와도 웃는 얼굴로 반겨주곤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그것은 '친절하고 특별한' 선생님의 호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운동회 날 나와 동생, 담임 선생님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날의 들뜬 기분과 운동장 풍경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서른여섯의 쌍둥이 엄마가 됐다. 엄마가 일하는 탓에 아이들은 만 두 살이 채 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아이들이 겨우 '엄마' 정도의 말을 하고 스무 걸음 정도 걷게 되었을 때 첫 번째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어린이집에 보내도 괜찮을까 걱정이 많은 나를 어린이집은 친절히 배려해줬다. 한 달간 쌍둥이가 생활하는 것을 틈틈이 지켜보게 해준 것이다. 보통 어린이집이 3월 개학 후 일주일 남짓만 엄마가 같이 등원하는 적응기간을 두는 것과 비교하면 큰 배려였다.
한 달간 그렇게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섯 살 이전 아이들은 부모가 없을 때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언론에서 종종 접하는 끔찍한 뉴스 때문에 가졌던 편견도 사라졌다.
살뜰한 손끝으로 딸아이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고 아들의 옷매무새도 만져주는 선생님이 믿음직했다.
아이들을 맡긴 뒤 몇 달 지나 만난 선생님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9명의 아이들과 하루 종일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씩씩했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찌나 정이 들었는지, 딸아이는 주말만 되면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울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선생님에겐 믿음이 가고 고마웠다.
매일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는 혼자서 키우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정부가 보다 다양한 정책을 통해 보육비를 낮추고,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환경을 조성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CCTV 설치 의무화, 부모 참여 활성화, 공공성 높은 보육 인프라 확충 등은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책들이 자리를 잡으면 지금보다 훨씬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내년에 다섯 살이 되는 쌍둥이들은 이제 유치원에 간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크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담임 선생님과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할지가 더 큰 걱정이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아이들 담임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들이 선생님을 잊더라도 나는 선생님을 잊지 않겠다'는 손 편지를 썼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나의 첫 담임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책장 속 사진첩에 끼워놓았듯, 우리 아이들도 첫 담임 선생님과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해줬으면 좋겠다. 먼 훗날 아이들이 오래된 사진을 보고 네 살 때의 좋은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갖게 되길 바란다.

글 · 전영화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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