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국의 성악도 윤광철(28) 씨가 제1회 도밍고 오페라 콩쿠르에서 입상해 세계적인 성악가로 부상할 기회를 잡았다. 지난 8일 밤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이 콩쿠르는 세계 정상급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가 후진을 발굴키 위해 개최한 대회이다.”

▷고승철·소설가 (출처 신동아)
1993년 5월 11일자 모 일간지 기사 일부이다. 이 기사를 쓴 당시 파리 특파원이 필자이다. 나중에 ‘윤광철’이 아니라 ‘연광철’임을 알고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YUN’이라는 영문 표기를 보고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해 11월 중순 그가 파리에 왔을 때 만나 백배사죄했다. 파리 시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연광철 님이 성악가가 된 사연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집안이 어려워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배우는데 음악 교사가 성악을 전공하라고 권유했단다.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나와 상경하니 서울 무대는 지방대 출신에게는 편견이 가득한 곳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할 때 도밍고 콩쿠르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그 후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고정 출연하는 등 세계적인 베이스로 성장했다. 그는 요즘 서울대 음대 교수로 제자를 키우는 한편 본인 스스로도 여전히 무대에 자주 선다. 필자는 그의 독창회에 가기도 하고 그의 음반을 듣기도 하는 등 팬이 됐다. 올봄에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그가 부른 ‘그대 있음에’라는 한국 가곡을 들었다. 바그너, 슈베르트 음악보다도 내 귀엔 가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그 노래가 훨씬 감동적으로 들렸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잠재적 충동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그대 있음에’를 흥얼거렸다. 그 무렵 세종 CEO합창단 단원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마침 단원 중에 지인이 있어 “노래에 문외한인데 가입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대환영이란다. 그렇게 해서 덜컥 입단했고 주 1회 노래 연습을 하게 됐다. 성악가 겸 합창 지도자인 임미선 감독의 가르침을 받으니 별천지에 들어온 기분이다. 인체가 소리를 내는 원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고, 발성 연습 때 단원 개개인별 소리에 대해 개선점을 지적해준다. 호흡을 조절하고 감정을 살려 노래 부르는 시범을 보일 때면 ‘좋은 소리란 이런 것이구나!’를 절감한다.
공연 일정이 잡혀 있어 신입 단원을 당혹케 했다. 평화음악제에 주한 외교단 합창단, 라루체합창단, 세종CEO합창단 등이 함께 출연한단다. 작곡가 정한결 님이 이 음악제를 위해 새로 작곡한 ‘평화의 아리랑’을 비롯해 ‘그리운 금강산’ 등 6곡을 연습했다. 주한 독일 대사, 필리핀 대사 등 외교사절들과 세종문화회관에서 합동연습도 했다.
드디어 6월 5일 북한 땅이 눈앞에 보이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무대에 섰다.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 빈 국립음대 동문 오케스트라, 서울솔리스트 첼로 앙상블, 브라스 앙상블 등 연합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반주와 함께 연습한 레퍼토리를 불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였지만 남북한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며 열창했기에 관객들도 경청하는 듯했다.
아직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초보 합창단원이지만 맡은 파트가 베이스라는 이유만으로 자꾸 베이스 연광철 님을 흠모하게 된다. 목소리라는 신비한 악기를 지닌 사실을 모르다가 합창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도 큰 수확이다.
글 · 고승철 (소설가) 20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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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