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영조가 고추장 애호가였다는 걸”

1

 

2국내에 현존하는 기록물로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은 무엇일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을 맡으면서 비서실 기능을 했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일자별로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현재 1623년(인조 1년)부터 1910년(융희 4년)까지 288년간의 기록 3,243책이 남아 있다. 총 글자 수만 2억4천여 만자에 달하고, 이 책을 모두 다 번역하면 300쪽 분량의 5천책에 달할 정도로 그 내용이 방대하다. <조선왕조실록>이 1,187책이고 번역본 분량이 400여 책인 점과 비교해도 <승정원일기>의 분량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분량뿐만 아니라 내용도 뛰어나다. 최측근에서 왕을 보좌한 승정원에서 기록한 만큼 왕의 동선(動線)을 비롯하여 왕이 거처했던 궁궐의 건물, 신하들과 주고받은 대화, 왕의 기분과 건강까지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그야말로 국왕의 숨결까지 접해 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승정원에서는 왕의 지시사항이나 명령을 정부 각 기관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국왕에게 보고하는 각종 문서나 신하들의 건의사항을 왕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정원(政院) 또는 후원(喉院)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후’는 목구멍을 뜻하는 한자어로 승정원이 국왕의 말을 바로 대변하는 핵심기관임을 암시한다.

<승정원일기>를 작성한 까닭은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여 국정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작성자는 승정원의 사관(史官)으로 불렸던 주서(注書)들이었다. 한 달 분량을 정리하여 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쳤는데, 왕에게 올리기 전 일기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영조대 이후에는 한 달 분량의 일기가 1책으로 편집되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 분량에 따라 한 달에 2책씩 작성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개 15일을 기준으로 하여 ‘망전(望前)’과 ‘망후(望後)’로 분류하였다.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왕이 열람하지 않고 보관을 위해 제작한 책이었다면, <승정원일기>는 왕이 그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매일 기록된 일기였지만 아쉽게도 조선 전기에 기록된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이나 1624년의 ‘이괄의 난’과 같은 병화와 정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조선 후기에도 1744년(영조 20년)과 1888년(고종 25년) 등 몇 차례에 걸쳐 화재를 만나 책들이 일부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자 시강원(侍講院)의 기록인 <춘방일기(春坊日記)>와 조정의 관보에 해당하는 <조보(朝報)>를 비롯하여 주서를 지낸 사람의 기록인 <당후일기(堂後日記)>와 지방에까지 널리 수집한 각종 기록들을 정리·종합하여 빠진 부분을 채워나갔다. 이 결과 1623년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 날마다의 <승정원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 올 수 있게 되었다.

<승정원일기>는 왕과 신하들의 의견 교환에 관한 기록이 특히 자세하며, 왕의 표정이나 감정 하나하나까지도 상세히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또한 역대 왕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세에 대해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약방이나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사실과 왕실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영조가 고추장을 즐겨 먹고 건강검진을 자주 받았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왕의 언행, 기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철저한 기록정신은 세계적으로도 방대한 기록물 <승정원일기>가 탄생하게 한 요인이었다.

<승정원일기>에 매일의 날씨까지 기록된 것도 주목된다. 청(晴 : 맑음), 음(陰 : 흐림), 우(雨 : 비), 설(雪 : 눈) 등 매일의 날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오전청오후설(午前晴午後雪)’ 등 하루 중 날씨 변화까지 기록했다. 조선시대 역사의 보물창고가 되는 <승정원일기>의 번역사업이 앞당겨져 조선시대 역사의 다양하고 생생한 면모들이 우리 앞에 좀 더 빨리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10.27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