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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나에겐 오래된 미용사 친구가 있다. 작은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던 그는 이제는 대단지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에서 2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헤어 숍'의 대표가 되었다. 매달 말 미용실에 가서 짧게 머리를 자른 것이 이제 십 년이다. 그는 미용사인 아내와 두 아이를 거느린 가장이면서 머리를 하는 동안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원재훈

▷원재훈 시인

가만히 생각하니 이런 친구는 흔하지 않다. "밥 한번 먹자"라고 이야기하고는 십 년 동안 못 본 친구들도 있다. 시를 쓴다는 우리들이 이 지경이니 우리나라 중년의 사내들이라면 거의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가 좋다. 여자들이 미용실에서 수다를 떨면서 각종 정보를 교환하듯이 그에게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내가 의자에 앉으면 그는 "짧게 자르실 거죠라고 묻는다. 이 말은 '안녕하세요'라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그날 그는 횡단보도에서 만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중년 여인답게 날씬하지는 않은 여자다. 횡단보도에서 아들을 발견한 엄마가 중학생 아들에게 손을 반갑게 흔들었는데, 이 녀석이 엄마를 피해 달아나버렸다. 집에 돌아와 울고 있던 엄마는 내가 그렇게 부끄럽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들이 한다는 말이 "엄마는 제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여느 때와 달리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제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라서 그런가 싶었다.

가끔 머리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너 집에서 아빠와 이야기를 하니라고 물으면 "아빠와 무슨 이야기를 해요라고 반문한다고 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조금 예외적이 아닌가 싶었는데,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것 같다고 더욱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머리를 하고 나오면서 냉동실에 넣어둔 빵이 생각났다.

곰팡이가 조금 피어 있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먹으려고 했는데, 어제 그 빵을 버리고 말았다. 그 아이들은 냉동실에 있는 빵과도 같다. 곰팡이가 핀 빵을 맛있게 먹을 수 없듯이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가정이 막 구워낸 빵처럼 맛있는 가정은 아닐 것이다. 그저 딱딱하게 굳어 뜯어 먹기 힘든 빵이다.

조금 성마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와 엄마의 사회적 지위와 외모가 부모 사랑의 기준이 된다면 굳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필요가 있을까? 솔직히 가족 부양을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탈진이 될 때까지 죽어라고 써댄다. 그래서 그나마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수입으로 나 혼자 먹고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편리한 시내 오피스텔에 살면서 아마 중급 외제차도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친구들과 차를 마셔도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어떤 녀석은 수년 동안 아예 돈을 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녀석은 작년에 가족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불쌍하다. 내가 불쌍하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산다면 가족제도가 더 이상 존속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미용사 친구가 그토록 열심히 머리카락을 먹어가면서 일하는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들 때문이다. 십 년 동안 그가 귀여운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수없이 들었다.

그의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 딸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간다. 딸이 전화를 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나는 횡단보도에 서서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청소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참 예쁘다. 어른인 내가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 것 같아 갑자기 부끄러웠다.

 · 원재훈 (시인)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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