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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어, 어, 어…?”


셋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말줄임표다. 서로의 위아래를 훑던 눈동자들은 금세 자신의 차림새를 살폈다. 수미도 금자도, 나 역시 베이지였다.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모두 베이지 컬러였다. 선택하고 말 것도 없는, 누구나 즐겨 입는 기본 디자인에 같은 55사이즈. 이를 어쩌나. 키 크고 늘씬한 수미의 우아한 자태와 10cm 힐로 무장한 금자의 도도함 앞에서 나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차가운 바람만 아니라면 당장 벗고 싶었다.


셋이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정기모임이었다. 지방 소도시 학교 동창으로 맺어진 우리 인연은 서울에 와서도 6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대도시생활과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됐을 무렵, 접하는 문화도 다양해졌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누렸던 소규모 전시회와 영화 관람에서 벗어나보자고 입을 모으곤 했다. 의논 끝에 내려진 결론은 신촌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었다. 뮤지컬이라… 뭔가 차려입어야 할 것 같았다. 먼발치에 있던 봄이 어느새 다가온, 겨울 끝자락이었기에 고심 끝에 고른 옷이었다.


처음으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처음으로 긁었다. 서명 난에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이름 대신 사인을 했다. 한 달 치 월급과 바꾼 바바리였다. 코트는 짧은 내 종아리를 훌쩍 가릴 만큼 치렁치렁했다. 157cm의 아담한 키가 입기엔 버거운 롱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벼르고 별러 산 코트인가. 땅에 끌려서 먼지를 쓸고 다녀도 아랑곳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며칠 동안 방 안에서 입고 벗기를 반복하며 거울을 향해 히죽히죽 웃었다.


친구들과 뮤지컬을 보기로 한 날, 드디어 집 밖으로 처음 입고 나왔다. 하지만 두 친구의 당당한 자태 앞에서, 부풀었던 내 가슴은 한없이 쪼그라졌다. 아직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왼쪽 주머니에 넣어둔 코트 상표를 왼손으로 슬그머니 구겼다. 


얼마 후 나의 첫 바바리는 추억을 데리고 옷장으로 들어갔다. 옷걸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은 자주 손이 가는 옷, 오른쪽은 뜨문뜨문 입는 옷을 걸었다. 바바리는 언제나 옷장 한가운데 또는 왼쪽을 차지했다. 옷장 안에도 서열이 있다면 바바리는 대장이었다.


그랬던 나의 바바리가 이젠 오른쪽 끝으로 자릴 옮겼다. 왼쪽을 내어주고 오른쪽으로 이동한 건 전적으로 바람 탓이었다. 해마다 상승하는 기온은 간절기 바람을 차츰 사라지게 했다. 차가운 바람이 한 꺼풀씩 벗겨져 사라질 때마다 바바리는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밀려났다.


밀려나긴 했어도 어디 한 군데 오염되거나 늘어진 곳 없이 깨끗하다. 톤다운 베이지 색상은 여전히 그 부류의 기본 색상인 데다 디자인도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 넓은 소매통과 큼직한 사각 주머니는 오히려 요즘 스타일과 잘 맞는다. 더는 밀려날 곳 없는 맨 끝에 다다른 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자릴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처음이란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옷장을 나서지 못한 바바리를 꺼내 몸에 걸쳐본다.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몸은 불고 옷은 작아졌다. 그래도 길이는 여전히 종아리를 넘어 발목을 간질인다. 숨을 들이쉬고 벨트를 묶었다. 허리가 살짝 불룩하긴 하지만 그리 볼썽사나운 건 아니다. 바바리에 잔잔히 붙은 나이 많은 먼지들을 떼어냈다. 싱긋, 웃음이 난다.


처음 뮤지컬을 보러 가던 그날, 세찬 꽃바람에 바바리를 펄럭이며 셋이 나란히 걷던 그때, 수미와 금자가 주거니 받거니 말했다.


“흠, 우리 파리 특파원 같지 않냐? 특파원 1, 2, 3!”


상큼했던 20대를 떠올리기에 이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바바리에 말을 건넨다.
“아직은 나랑 같이 좀 더 있자. 어때, 특파원 3으로 보여?”


바람에 코트 자락을 치렁치렁 나부끼며 걸어줘야 제대로 된 해후인데. 바람이 필요하다. 꽃바람이 세차게 불어왔으면.


김순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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