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어쩌다 보니 잡지에 상담 관련 글을 연재하고,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애 상담을 하고 있다. 처음 라디오 담당 피디가 내게 전화를 했을 때 반문했었다.
“전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아니고, 상담 경험도 전무해요. 그냥 작가잖아요!”
그러자 피디가 해맑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연애소설 많이 쓰셨잖아요!”
그때, 피디에게 내 소설은 대부분 헤어지는 이야기라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는 예의 해맑은 목소리로 일단 한번 나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성실하고 다정한 부탁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방송이 세 번의 계절을 넘겨 9개월이나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사랑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니, 헤어지는 이야기가 8할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헤어져서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헤어질까봐 두려워요,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고 싶어요! 어떻게 하죠? 도와주세요! 제발!!!
이별의 이별의 이별의 도미노가 사방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모두가 ‘이별’의 변주곡을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매주 연애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다. 이전과 달리 우리 세대의 연애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 가령 ‘과거의 사람들’이란 말이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24시간 연결된 SNS 영향이라는 걸 제대로 실감했다. 헤어진 남자친구를 ‘아는 사람’ 혹은 ‘친구 추천’에서 벼락같이 보게 되는 시절 아닌가. 한 후배는 헤어진 애인의 현재 여자친구가 자신의 ‘친구 추천’에 뜨길래, 종일 심란한 맘에 그녀를 스토킹했다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선배! 전 남친 다음 달에 결혼한대요! 여친도 진짜 예뻐! 젠장, 대체 내가 왜 이딴 걸 알아야 돼!!!!!”
너무 많은 정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익사시킨다.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별에 대한 특별한 통계였다. 헤어진 사람의 82%가 다시 만난다는 것. 그렇게 다시 만난 97%가 다시 헤어진다는 것. 이별 당시와 똑같은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이 통계 수치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이젠 헤어진 커플이 만날 일은 점점 더 많아진다. 헤어지지 못해 눈물짓는 청춘 남녀들의 사연은 지금도 얼마나 많이, 자주, 도착하는가!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잘 알고 있다. 연애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가장 먼저 묻는 것도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만난 거야?”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랑의 시작에 대한 궁금증의 절반만이라도 사랑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쏟는다면 우리 사랑은 조금쯤 달라질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나는 사랑이 ‘자연발생적’으로 발화된다고 믿는 청춘 남녀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느껴지고 행하게 되는 게 사랑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것이 드라마와 영화, 소설 탓인 걸까. 하지만 단언컨대 사랑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말 그렇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사랑을 잘하게 해주는 Q&A 북 정도라고 생각한 채 서점에서 덥석 사들고 읽어가던 중학생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책이었지만, 그 책에서 내가 배운 게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사랑도 기술이구나! <사랑의 기술>은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는 책이었다. 기술이란 무엇인가. 배워야 하는 것이다. 배워야 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외과의사가 수술을 배우듯, 항공조종사가 조종술을 배우듯,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 작용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눈물짓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미칠 것 같다는 청춘들의 사연을 계속 접하다 보니 언젠가 사랑에 관한 본격 에세이도 써보고 싶어졌다. 첫 챕터를 쓰게 된다면, 이런 제목의 글부터 쓰고 싶다. ‘사랑하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 다음 챕터의 제목은 ‘사랑을 시작하는 것’과 ‘사랑을 유지하는 능력’ 역시 별개! 암울하다고? 사랑의 마지막 단계를 ‘결혼’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은 결코 간단치 않다. 결혼은 낭만적 사랑을 죽이는 지름길이니까! 니체도 말했다. 우울한 말은 우습게 하라고.
백영옥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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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