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오해하면 안 된다. 옴팡눈은 옴팡눈이지 퀭한 눈이 아니다. 밤새고 난 다음 날 거울 앞에서 발견하는, 서양인에게 흔한, 눈썹 뼈는 도드라지고 눈자위는 푹 꺼진 눈이 아니라는 거다. 옴팡눈에는 일말의 피로한 기색도 없다. 그것은 두툼한 패딩코트를 결박한 단추처럼 집요한 힘으로 충천해 있다. 물론 보는 이에게 그리 산뜻하거나 유쾌한 기분을 주지는 못한다. 옴팡눈이가 가진 ‘골똘한 응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학에서도 반기는 길상(吉相)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욕심이 집요한 눈으로 분류하고, 서양에서는 현상계 너머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치켜세우면서도 그로 인한 자만심으로 보편적 상식을 저버리기 쉬운 범죄적 충동성을 지적한다. 이 무슨 도스토옙스키적인 설정인가. 요는, 제 눈빛만큼이나 침통하면서도 격렬한 영혼을 가졌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우리 집안 가장 윗대 옴팡눈이는 친할머니다. 신 씨 성을 가진 할머니는 삼남매를 낳았는데, 막내아들인 내 아버지에게만 옴팡눈을 물려주셨다. 어려서부터 나는 할머니가 학교 문턱도 못 갔지만 한글을 스스로 깨쳤느니, 사업 실패로 삶의 의지를 놔버린 할아버지를 대신해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거뒀느니 하는 얘기를 소소한 무용담처럼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옴팡눈도 기세가 대단했다. 성장기 내내, 나는 친구들에게 툭하면 “너희 아빠 형사니?” 소리를 들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쏘아보는 듯한 눈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당신 아들딸에게 차별 없이 자신의 옴팡눈을 대물림했고, 특유의 집요한 통제와 격렬한 피드백으로 우리를 훈육했다. 칭찬은 짧고, 지적은 길었다. 나중 일이지만, 내가 글쓰기로 이런저런 상을 타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긴 한숨에 이어 딱 한 말씀만 하셨다.
“너는 그래, 온종일 타자만 치는 거냐?”
“타자가 아니라 글을 쓴다잖아요.”
옆에서 어머니가 거들었지만, 나는 그냥 웃음만 났다.
“나도 알아.”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 글 쓴다는 말은 뭔가 오글거려서 도무지 할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불쌍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3명의 옴팡눈이와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다. 동생과 내가 어렸을 때는 세월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셨을 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헛된 기대로 드러났다. 남매가 자라나자, 전에는 한 사람 목소리만 담장을 넘던 것이 나중에는 세 사람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담장을 넘었기 때문이다. 누구 한 사람 참는 법도, 봐주는 법도 없는 집안. 독설로 소통하고 사랑하는 기이한 가족. 어머니는 새벽마다 성경책을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 하셨다.
그런데 지난해, 이 옴팡눈이 집안 계보 말단에 1명의 리스트가 추가되었다. 장가간 남동생이 제 눈을 판박이 한 딸아이를 낳은 것이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뺨에 새까만 눈이 씨눈처럼 박힌 얼굴을 보고, 동생은 껄껄 웃으며 ‘알감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동생아, 웃을 때가 아니다. 저 새까맣게 도사리고 앉은 눈이 네 마음을 얼마나 후벼 팔지, 너는 예감도 없다는 거냐?
나의 조카, 알감자 양은 백일이 지나자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옴팡눈이 기질’의 첫 신호를 알렸다. 물론 표현력이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유아기의 특징적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 애가 바닥에 쿵 머리를 내려찧자 내 가슴도 그만 쿵 내려앉았다. 아, 어떡하지. 격렬한 마그마가 들끓는 이 내성적 다혈질의 꼬맹이를. 뭉클한 슬픔과 기이한 감동과 끈끈한 정이 뒤엉켜 뇌수에 쏟아져 들어왔다. 우스꽝스러운 혼잣말이 부끄럼도 없이 흘러나왔다. 아아, 너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집 아이구나. 걱정 마라. 어떻게든 네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이번 설날은 4명의 옴팡눈이가 가족이 되어 맞는 첫 명절이다. 핏줄이란 참 뜨겁고 신기한 것이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가슴이 울렁울렁해지는 구석이 있다. 과학이 유전자의 신비를 모두 밝혀낸 판국인데도 말이다. 늘 그랬듯, 이번 설에도 우리는 독설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아버지는 늦게 도착한 우리 남매를 “아니, 왜 이리 빨리 왔어? 나는 설 다 쇠고 올 줄 알았지”, “선물이 고작 그거냐?” 등 기이한 화법으로 핀잔하며 반기실 게다. 하지만 아무리 반가워도, 목소리가 담장을 넘는 법은 없어야겠지.
김은하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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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