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에어컨 고장 신고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수리기사가 오지 않는다. 식구들은 찜통의 만두처럼 뜨겁다고 난리다. 다시 고장 신고를 하고,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서 잠시 쉰 다음 책상에 앉아도 이내 땀이 흐르고 몸은 파김치가 된다. 소파에 벌렁 누워 ‘아이고’를 연발하면서 무더위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집을 사무실처럼 쓰기 때문에 때가 되면 밥을 해먹어야 한다. 아내는 밖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삶은 달걀이 먹고 싶어졌다. 달걀은 그냥 몇 개 삶아 먹어도 되고, 프라이나 달걀말이, 라면에 투입하기 등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먹음으로써 인체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가스 불을 올리니 집 안에 태양이 하나 더 들어온 것 같다. 달걀 5개를 넣고 다 삶아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가스 불을 끄고 찬물에 담가 껍데기를 깐다.

달걀 껍데기를 까면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가만있어봐라, 달걀은 껍데기가 보호하고 있는 액체 상태의 물질이다. 역할은 같아도 사과나 배의 껍질과는 다르다. 칼로 달걀 껍데기를 벗겨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뜨거운 물에 삶아내니까 단단한 알이 된다. 달걀말이나 프라이는 어떤가. 그것은 아예 기름에 지지거나 튀긴다.

내가 달걀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무서운 일이다. 대장간에서 담금질을 하는 칼이나 낫 같은 도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달걀은 그날 나에게 한여름의 더위와 그것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한다. 뭐든 견뎌야 이뤄지는 법이다. 나는 잠시 고독해졌다. 마음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분다.

잠시 헤밍웨이 생각을 한다. 그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작가로서의 삶은 최상의 상태에서조차 고독한 상태입니다. 작가들을 위한 조직은 일시적으로는 작가의 고독을 덜어주겠지만, 그것이 작가의 창작 행위까지 진작시켜줄지는 의문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저버림으로써 공적인 위상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종종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은 오로지 혼자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그가 만약 훌륭한 작가라면 그는 영원한 고독 혹은 영원한 고독이 주는 결핍과 매일매일 마주해야 합니다."

 

삶은달걀

작가로 살아가면서 가끔 생각하는 문장이다. 인간의 삶은 달걀과도 같은 것이다. 얇은 껍데기 안에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분노, 절망, 탐욕 등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 삶은 달걀처럼 단단해지면서 껍데기를 까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달걀을 삶는다는 것은 헤밍웨이의 말을 빌리자면 고독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 이 더위는 달걀을 삶는 뜨거운 물이 아닐까. 그리고 이 연설은 요즘 세태에 잘 어울리는 연설이다. 작가라는 말 대신 공직자들이나 정치인, 혹은 연예인의 이름을 넣고 읽어보라. 실소가 날 것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은 정말 고난의 길이다. 하지만 자신의 공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독을 저버리는 작가의 작품처럼 개인적인 욕심에만 몰두하면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살면서 오로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헤밍웨이 같은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는 게 필요하다. 잘 생각나지 않는 분을 위해 필자가 한 가지 추천을 한다. 바로 독서다. 좋은 책 한 권을 잘 읽으면 삶기 위해 뜨거운 물에 들여놓은 달걀처럼 단단한 삶을 만들 수가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집중해 소리 내서 ‘잘 읽은 사람’의 삶이 그럴 것이다.

 

· 원재훈 (시인) 2016.08.01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