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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선릉공원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소재한 공원이다. 정식 명칭은 삼릉공원이다. 성종과 제2계비 정현왕후를 모신 선릉과 그의 아들 중종을 모신 정릉, 이렇게 3개의 능을 구심점으로 삼아 조성한 공원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때 나는 그 일대에서 거처하며 지척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선릉공원과는 엎어지면 코가 아니라 배꼽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헤아려보니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다. 덕분에 선릉공원의 사계는 물론이고 희붐한 새벽빛에 감싸인 솔밭이며 저녁나절 긴 그림자를 드리운 왕릉의 육중한 침묵, 정오의 태양빛에 따스하게 물들어가던 망주석의 온기까지 새록새록 두루두루 경험했다.

그러고도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선릉공원에 대해서 감질이 나 있었다. 사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장소에 대한 보다 디테일한 설명이 불가피한데, 선릉공원은 편의상 공원이라 부를 뿐이지 엄밀히 말해 공원이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엄연한 유적지기 때문이다. 공원과 유적지에는 입장료가 있다는, 입장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유적지는 통상 오후 6시 전후면 문을 닫고, 이 점에서는 선릉공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의 감질이 기원한다. 평일에는 회사에 묶여 있느라, 주말에는 늦잠을 시작으로 ‘좀비 모드’에 빠지는 통에 입장 시간에 맞춰 공원에 가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나는 평일 한낮에, 굳이 선릉공원 바깥을 에둘러 점심 먹으러 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공원 안에서 새어나오던 그 행복감에 젖어 평온한 목소리들. 해마다 이맘때면 공원의 푸른 잔디밭 위에서는 으레 교회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고, 그 멜로디 사이사이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나는? 공원의 바깥에서, 그 소리의 결 하나하나를 속속들이 음미하며 맹렬한 질투심으로 전율했다. 토요일 아침에 맨 먼저 입장해 아무도 못 본 선릉·정릉의 청신한 맨얼굴을 보리라 다짐했고, 일요일 한낮에 느긋이 벤치에 기대 커피를 홀짝이며 양상추가 아삭아삭 씹히는 샌드위치를 먹는 공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가끔은 정말로 그 꿈이 이뤄졌다. 컨디션이 괜찮아 ‘좀비 모드’에서 일찍 탈출한 주말이나, 야근한 다음 날이라 늦은 출근이 용인되는 그런 날이었다. 입장권을 받아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공원 출입구에 들어설 때면 가슴이 정말 웃기지도 않게 벅차올랐다. 아예 눈 밖에 있으면 까먹겠는데, 내내 눈앞에 맴돌면서 가질 수 없는 대상이 주는 갈증이 그만큼 컸나 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어렵사리 공원에 들어서고 나면 늘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공원 안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약속된 모든 것이 약속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3개의 능과 고색창연한 재실, 솔숲 사이로 난 산책로 등등 안내판에 기재된 내용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음, 내가 하려는 말이 뭔가 하면…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나는 (모처럼의 성취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기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번번이 실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왜 공원 안은 공원 밖에서 기대한 것만 못할까? 거창하게 말해, (뭐 웃으셔도 좋은데) 나는 이 문제를 선릉공원 가까이 사는 내내 10년 가까이 관찰하고 연구했다. 날씨라든지 컨디션이라든지, 그날 공원의 구성원이라든지 거기엔 여러 변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한 가지로 흘러갔다. ‘공원 안은 언제나 공원 밖에서 기대한 것만 못하다.’ 이 법칙은 안 맞을 때를 제외하곤 늘 맞았기에, 나는 여기에 ‘선릉공원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런 한 줄 평을 달았다. 인생이 이런 식이라면 곤란한데.

그런데 이와 비슷한 법칙으로 세상에는 ‘페라리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이것을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에세이에서 발견하고 박장대소했다. 이 웃긴 남자는 글쎄 돈을 왕창 벌어서 꿈에 그리던 페라리를 사서는, 정작 자기는 안 타고 친구더러 그걸 몰고 달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택시를 타고 페라리를 뒤쫓았다. 황당해하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그가 던진 답은 이랬다. “바보 아냐, 그래야 내 차를 볼 수 있잖아.”

선릉공원 안에서는 선릉공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기타노 다케시도 ‘페라리의 법칙’을 발견한 날, 뜻밖의 낭패감으로 이런 속엣말을 했을지 모르겠다. 아아, 인생이 이런 식이라면 곤란한데.


구승준 | 번역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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