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운전이 미숙한 데다 길눈까지 어두워 운전대만 잡으면 진땀을 흘렸던 내게 내비게이션(길안내기)은 더없이 고마운 새로운 문명이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덕에 긴장과 두려움 없이 목적지에 편안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자유학기제도 그러한 내비게이션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제도는 우리나라 교육사의 한 획을 긋는 교육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년간의 교감 생활 동안 끊임없이 개선되지 않았던 고질적인 문제들이 자유학기제를 실시한 이후 상당 부분 해소됐다.
강의 일변도의 수업에 엎드려 자는 것이 습관처럼 된 아이들, 온갖 교육적 처방에도 사라지지 않던 크고 작은 학교폭력으로 거칠어진 아이들로 진통을 겪던 교육 현장. 나는 이런 현장에서 자유학기제라는 신선한 처치를 체험했다.
자유학기제는 이미 시범 운영을 넘어 전면 시행에 들어서는 분위기다. 그동안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고 헤쳐가게 하는 '자기 주도성'과,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성찰'에 방점을 두고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구성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2013년에 시범 운영을 했으니 벌써 그 주인공들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필자는 지난 3년 동안 학교를 옮겨가며 자유학기제 교육과정을 기획해왔다. 먼저 재직한 학교는 남학교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었다. 낮은 자존감과 누적된 학습 부진으로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자유학기제는 '공부와 체험이 조화된 종합 선물세트'였다.
자유학기를 마치고 일반학기로 복귀한 아이들은 변해 있었다. 교사들은 내심 자유학기 동안 오후 시간에 주로 체험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후 학기에는 장시간 교과활동을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생길까 우려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아이들로 변해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 귀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이 남았다.

▶자유학기제는 내년에 전국 중학교에서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2학기부터 관내 모든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5월 12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선포식에서 학생들이 바리스타와 제빵기술자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무기력한 학생들에게
'공부와 체험이 조화된 종합 선물세트'
자유학기제는 그간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돼왔다. 학부모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 교원은 '체험 인프라의 부족과 업무 과중'과 '일반학기로 복귀 시 지도 어려움'이 문제로 지목됐다. 자유학기제 시범 운영 3년이 지난 지금도 체험 인프라의 부족을 문제시하는 상황이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진로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 인프라의 부족'만큼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체험 인프라가 한정돼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유학기제 시범 운영 첫해는 체험처가 부족하고 프로그램의 제공도 산발적이었다. 하지만 이듬해는 체험처 섭외가 더 수월해졌고 올해는 상황이 더 나아졌다. 부평서여중만 해도 2~3주 만에 31개의 체험처가 섭외됐다. 심지어 체험 프로그램 세팅이 완료된 후 체험처 여기저기에서 지원 의사를 보내와 일일이 거절해야 했을 정도다.
우리 학교가 있는 인천 지역만 해도 교육청과 산하 사업소를 주축으로 시청, 사회적 기업, 개인의 재능기부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농어촌 소재 학교에서는 체험 인프라 구축에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교원의 업무 과중 문제도 해결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고 최적의 운영 시스템을 모색하며 교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있다. 교사가 자유학기제 운영으로 피로가 누적될 경우 당초 기대했던 자유학기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양질의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운영'과 '교사 업무 과중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유학기 이후 일반학기로 복귀하면 학생, 교원 모두 힘들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물론 시험이라는 중압감이 없는 데다 오후의 활동이 모두 역동적인 자유학기에서 일반학기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우리 학교는 복귀에 따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세워 자유학기와 일반학기 모두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유지하도록 한다. 즉 학생이 주체가 돼 움직이고 탐구하는 수업을 자유학기에 이어 일반학기에도 실현하도록 한다. '학생활동 중심 수업'을 만들려면 우선 교사 스스로가 변해서, 학생이 수시로 질문하고, 자유롭게 답하고,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교사가 조력자가 되는 수업일수록 섬세하고 치밀한 수업 설계가 필요한데, 무엇보다 교사의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이런 수업을 진행하려면 평가체계가 보완돼야 한다. 자유학기제 기간에 시험을 보지 않다가, 일반학기에 집필평가의 비중이 높아지면 이에 따른 온도차로 학생들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학기제 핵심 '성찰' 유지
학생활동 중심 수업 이어가
이와 함께 우리는 '삶의 이야기'를 교육과정에 담아내려고 한다. 자유학기제에서 방점을 두는 것은 바로 '성찰'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꾸준히 생활과 삶 전반에 걸쳐 되물어야 할 성찰을 자유학기제에 국한하지 않고 교육과정에 포함한다. 우리는 이것을 전 학년 '교과통합 진로교육 수업'으로 구현한다. 담당 교사는 단순히 단원 내용만 가르치던 지도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즉 진로 교육의 목표는 개인의 자존감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굳건하게 살아내도록 소통하는 것인데 이때 교사는 수업을 통해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일러줄 수 있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수업은 자유학기제가 강조하는 '성찰' 프로그램의 연장이다. 이것은 학원 강사와 학교 선생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자유학기제는 전국의 다양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계속해 운영될 것이고, 교육의 형태와 도구 또한 진화해갈 전망이다. 이제 겨우 자유학기제를 3년간 운영했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보건대, 다른 학교도 비슷한 보폭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자유학기제는 요란하지 않되 강하면서도 놀라운 혁명이다.

글 · 표혜영(인천 부평서여중 교감)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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