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유대인들은 무려 25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고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비극을 거쳐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1900년 이후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의 29%, 즉 3분의 1은 유대인이었다. 세계 154위의 면적, 인구 약 780만 명으로 세계 98위에 불과한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바로 유대인들의 투철한 역사의식이 그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유대교의 구약 성경과 친구와 짝을 지어 함께 대화하고 질문하며 토론과 논쟁을 하는 '하브루타(Havruta)' 방식으로 유대인들은 수 세기 동안 탈무드 연구를 해왔다.
이로써 역사의식과 삶의 지혜를 어려서부터 배우고 몸에 익히며, 부모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자녀들에게 민족의 긍지를 심어준다. 이는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 것과 상통한다.
대한민국도 건국 이후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교과서 발행체제를 다양하게 변화시켜왔다.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엔 국정, 1954년부터 1973년까지는 검정, 1974년부터는 국정으로 전환해 유지해오다 김대중정부 이후 제7차 교육과정에서 검정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해 2011년부터 완전 검정체제가 됐다. 검정제 전환 이후 이명박정부 시절엔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에 이어 현 정부에선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우편향 논란으로 갈등을 빚다 진보단체의 채택 반대로 학교 현장 채택률이 0%가 되는 등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편향성과 오류에 대해 수정명령을 했지만, 6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은 교육부를 상대로 수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패소했고,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바 있다.

▶ 역사교육은 단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올해 제 96주년 3·1절을 앞두고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 내 태극기 마당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
최근 정부가 2017년부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역사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정치·이념 대결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렇듯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둘러싸고 교육의 본질보다 정쟁과 이념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국사를 학교교육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현 세대인 우리는 5000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과정과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미래세대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주지교과(主知敎科, 주요 교과목) 중심의 입시교육에 함몰돼 국사와 도덕 등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가정에서 우리 역사를 주제로 자녀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현재의 통찰력과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길러야 함에도 역사교육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행해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책임이자 국가의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국민과 학교 현장이 공감하는 교과서가 돼야 한다. 국정화의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정부 입맛에 맞는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약속과 이행이 선행돼야 하고 ▶초·중등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 및 내용과 방법 등에 대해 전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 균형 잡힌 방향을 설정해야 하며 ▶교과서 집필진은 이념적으로 편협하지 않은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가진 역사학자, 교사는 물론 정치·경제·사회 등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한다.
셋째,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전 국민이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한 국가·사회적 범국민 실천운동을 제안한다. 역사교육은 단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역사교육은 가정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무이자 학교교육에서만 이뤄지는 분절적 교육이 아닌 평생 이어져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만 끝나면 역사교육이 무뎌지는 현실을 개선하고, 이스라엘처럼 기성세대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5000년 역사를 공부해 자녀, 학생들과 토론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인식 공유와 역사교육은 우리 모두의 책무이기에 '전 사회적 인성교육 실천운동'처럼 '역사 바로 세우기 국가·사회적 범국민 실천운동'을 제안한다.
끝으로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의를 계기로 역사교육의 목표가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 정립이라는 점에서 '역사학(歷史學)'적 관점이 아닌 '역사교육(歷史敎育)'적 관점으로 교육 내용을 재정립해야 한다. 교과서 발행체제는 역사교육의 한 수단이지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균형 있게 사실관계를 정립해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해야만 해석적, 비판적 지식을 함께 가르칠 수 있다. 나아가 교육계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이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대결과 정쟁에서 벗어나 교육적 해법 모색에 지혜를 모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글 ·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서울교대 교수)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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