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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백두산 천지를 보고 싶을 때면 최계복 선생(1909~2002)의 사진을 보곤 한다.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사진집을 통해 우리나라의 1930, 40년대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보면, 의외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진들 중에서 특히 ‘영봉과 천지’에 눈길이 많이 간다. 이 사진은 파노라마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영봉과 천지의 한 장면을 담았다.

 

사진 속 영봉 위에는 서너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데, 이들이 있어서 백두산 천지의 스케일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랄까? 거기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거대한 천지의 장관이 눈에 보이는 풍경의 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준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사람’은 어떤 의미일까? 절벽과 같은 영봉에서 천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1942년 사람들. 선생의 등정 기록에 의하면 일본인 탐사 팀에 어렵게 합류해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촬영한 작품이다. 나는 이 사진에 남아 있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래된 기억

우리 집 거실에는 작고한 아버지와 장인어른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동시에 서너 살이 된 나의 손을 잡고 종로통을 걸어가는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서너 살의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을 찍은 사진도 걸려 있다. 이 사진들은 웃는 표정, 걸음걸이, 자세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론 아버지가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 아버지 모습은 장년인 지금의 내 모습과 흡사하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가 날씬한 투피스 정장 차림에 핸드백을 들고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추를 내놓고 있는 동생과 내가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오래된 기억은 사라졌지만, 오래된 사진은 남아 있다. 사진 속의 일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시절 사진을 보면서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최근에 독일 출장을 다녀온 친구에게서 사진 한 장을 선물받았다. 취재차 만난 독일인이  북한을 여행하면서 찍은 개성의 어느 마을 사진이다. 오래된 기와지붕은 허름하지만 군데군데 나무와 전봇대가 있다. 대문과 담장이 보이고, 좁은 골목길이 집 사이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곤 한다. 친구는 말했다. 우리나라 1970년대 동네 풍경 같다고…, 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너에게 주려고 가져온 거라고 했다.

 

사진을 보니 그 시절에 내가 살았던 이문동이나 신설동의 동네 풍경이 떠올랐다. 친구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동향이다. 두 분 다 젊은 시절에 개성에서 월남해 타향살이를 하다가 얼마 전 작고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후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공교롭게도 두 분은 1929년생으로 나이도 같았다. 어쩌면 두 분이 고향에서 아는 사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두 분은 나란히 6·25전쟁에 참전해 몸을 다친 국가유공자로 영혼을 국립현충원에 모신 것도 닮았다.

 

독일인이 찍은 사진 속에는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백두산 천지 영봉에도 사람이 있는데 개성의 한 마을은 대낮인데도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움직인 흔적이 없었다.

 

아…, 이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진 한 장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은 얼마나 오래된 마을인가? 비록 환하고 밝은 동네 모습이지만 사진 속에서 아버지 그림자를 찾지 못했다.

 

 

· 원재훈(시인. 1988년 <세계의 문학> 겨울 호에 시 ‘공룡 시대’ 외 여러 편으로 등단.

               시집 <딸기>, 소설 <망치> 등 발표) 2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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