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그리스 철학의 근원은 보통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에 이르러서야 ‘철학’이라 할 만한 그럴듯한 사유체계가 정립되었다는 게 철학사의 통설이다. 그 이전의 시대는 뮈토스의 시대다. 신화·영웅·전설의 시대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로고스, 즉 이성만의 역사는 아니다. 인간 사유의 역사는 넓게 보면 로고스와 뮈토스의 정신이 뒤섞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적이면서 문학적인 사유의 씨앗은 빵에 넣는 종균(種菌 : 이스트)처럼 앙상한 로고스를 부풀리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다.
철학사에서 이 종균에 해당하는 시기를 찾아가는 여행은 원소들이 격렬히 부딪치는 초기 지구 형성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흥분을 안겨준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이 바로 그 종균들의 고향에 해당하는 집이다.
이 책은 희랍철학의 여명기를 연 오르페우스, 에피메니데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등을 거쳐 데모크리토스까지 철학의 ‘기원전’을 다루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 이전 소피스트들이 남긴 어록, 그들이 서로의 사상과 삶에 대해 남긴 말, 그들 사이의 논쟁과 논박이 얽힌 지도를 사람별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각 사상가별로 장을 꾸민 공들인 작업이다. 번역자로 참여한 국내 소장학자 8명이 10년간 꾸준히 강독하고 토론을 거쳐 이뤄낸 결과물이라 더욱 값지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적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아포리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보면 점점 귀가 열린다. 피타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이지적인 것은 무엇인가. 수(數)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조화다.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인가. 앎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가장 참된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이 사악하다는 것이다.”(184~185쪽)
수많은 피타고니스트를 거느린 교주다운 발언임이 한눈에 인식될 정도로 단언적이다. 특히 ‘인간들이 사악하다’는 인식에 눈길이 간다. 동양에서도 이 시기 법가(法家)가 출현했으며 300년 뒤 한비(韓非)가 등장해 냉혈인간론을 종합했다. 춘추시대의 제자백가처럼 그리스 소피스트들의 삶과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알록달록한 맛도 느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말년에 숲에 기거하면서 풀과 나무뿌리를 먹고 지내다가 몸에 물이 차는 ‘수종증’에 걸리자 도시로 내려왔다. 그는 의사들에게 “홍수를 가뭄으로 바꿀 수 있느냐”라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의사들이 답하지 못하자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섰다. <자연에 대하여>라는 저작을 쓴 철학자답게 그는 직접 쇠똥을 자신의 몸에 칠하고 그 열기로 몸 속의 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효험을 얻지 못했는지 60세를 전후해 그는 죽었다. 철학적 사고는 애초에 이런 극단적인 자연과의 부딪침을 통해서 시작되기도 했던 것이다.
테아게네스는 “마른 것이 젖은 것과, 뜨거운 것이 차가운 것과,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과 싸운다”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어느 정도의 통제 아래 둔 오늘날의 투쟁과는 다르다. 당시는 사회적 통념과 편견, 고정관념의 답답한 올가미가 없는 세계였다. 즉, 작고한 출판평론가 고(故) 최성일 선생이 말한 것처럼 “소크라테스로부터 자유로운,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애지자들의 삶의 지혜”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글·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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