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 회사는 2013년 6월 오랜 노력 끝에 프레스 금형기술을 활용해 가볍고 견고한 스틸 그레이팅(Steel Grating : 쇠격자)을 개발했다. 두께는 더 얇고 용접 의존도를 최소화한 제품이다. 수직하중과 경사하중이 기존 제품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공인시험성적서로 증명됐다. 하지만 강판 두께가 2mm인 우리 제품은 단체표준인증을 받을 수 없었고 조달 등록도 할 수 없었다. 강판 두께 3mm 이상이 단체표준이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개발에 성공했는데 허탈감이 밀려왔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하면 뭐합니까. 단체표준인증이 아니면 공공기관에서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문전박대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혁신적인 제품을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기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우수한 제품이 단체표준인증을 못 받는다고요? 다른 제품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한데요"라면서 가끔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단체표준인증을 받지 못했기에 영업이 되지 않았다. 기존 제품보다 성능 좋고 가격이 저렴하면 잘 팔릴 줄 알았지만, 현실에선 악법도 법이었다. 성능보다 규정이 더 중요했다. 절망감만 점점 쌓여갔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스틸 그레이팅 설계기술을 외국이나 제삼자에게 팔려고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경기지방중소기업청을 찾았다. "단체표준 심사기준을 제대로 한번 바꿔볼까요?"라는 직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단체표준이 개정되는 것보다 내 편이 생겼다는 것이 희망적이었다.
다음 날 우리 회사를 방문한 직원은 제품의 제조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제품의 성능인증 획득을 권유했다. 또한 단체표준 심사기준 개정은 자신이 나설 테니 걱정 말라고도 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열심히 나서주는 직원에게 신뢰가 저절로 생겼다.
노력 끝에 드디어 단체표준 심사기준이 개정(강판 두께 3mm→2mm)됐다. 9월엔 중소기업청 '성능인증'을 획득하고 2015년 7월엔 조달청 '우수제품'에도 지정되어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갖췄다. 비교적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본부, 한국전력공사, 한전KPS, 용인시청 등에 납품했고 많지는 않지만 러시아와 콜롬비아에도 수출했다. 한마디로 '손톱 밑 가시'를 뽑아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규제개혁에 힘쓰는 공직자들이 정말 고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소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만든 것도 공직자들이다. '만들 때 제대로 만들지'라는 푸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손톱 밑 가시는 현장에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가시를 뽑을 수 없다. 현장을 찾아다니며 발로 뛴다면 국민과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개혁에 대한 체감도는 올라갈 것이다. 정부가 아닌 국민과 기업의 수요자 눈높이로 정책을 만들어주길 소망한다. 직무에 책임감을 갖고 정성을 다해 가시를 뽑아준 그 따뜻한 마음이 부디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글 · 권혁명(신원엠에스<주> 대표이사)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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