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얼마 전에 <스탈린그라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잔혹 처참했던 전쟁으로 악명 높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영화는 많다. 비교적 근작으로는 1993년에 독일군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스탈린그라드 : 최후의 전투>가 있고, 2013년에 러시아 감독이 자국 입장에서 조명한 <스탈린그라드 : 정찰병>이 있다. 내가 본 건 후자다. 영화는 볼 만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잇는 스펙터클 대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다음의 내레이션이 귓가를 맴돌았다. 독일군과 소련군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수하기 위해 싸웠다고. 전쟁에서는 이기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 최소 희생은 전쟁의 기본이다.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선 복수극이 펼쳐졌다. 대량살육이 벌어진 이유다.
스나이퍼들의 활약이 가장 빛났던 전투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왜 그토록 서로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가슴이 아팠고 알고 싶기도 했다.
왜 극도의 공포와 증오심 속에서 서로를 죽이길 갈망했는지 말이다. 그러려면 역사를 알아야 했다.
여기에 대해선 <피의 전투, 스탈린그라드>(안토니 비버, 다른 세상)라는 책이 있지만 내 손은 <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으로 향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거의 인접한 시간에 스탈린과 히틀러라는 두 인물이 벌인 전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제2차 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투가 바로 모스크바 공방전이다.
<세계사 최대의 전투 : 모스크바 공방전>을 보면 모스크바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양측을 합쳐 700만명의 장병이 참전한 사상 최대의 전투였고, 그중 250만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실종되었다. 러시아 군사 기록에 따르면 러시아 측의 전사자, 실종자, 포로를 포함한 95만8천명은 결국에는 모두 사‘ 라져’ 버렸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는 모스크바 전투의 절반 정도인 360만명이 참전했고, 양측을 합쳐 91만2천명의 희생자가 났을 뿐이다.
2007년 출간돼 <워싱턴포스트> ‘최고의 논픽션’에 선정된 이 책에서 저자는 기록보관소에서 새롭게 기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비롯해 모스크바 전투와 관련된 56명과의 인터뷰, 핵심 인물들의 일기, 편지, 회고록 등을 참조하여 마치 실제 모스크바 공방전의 현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이 책에 담았다.
“큰 말뚝이 관통한 견갑골”과 같은 구체적 전투 현장, 독일군이 점령하고 지나간 현장마다 나무에 목 매달린 시체들, 사냥꾼 출신 사수들의 엉성하지만 뛰어난 활약 등 세부적인 장면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전투의 전략·전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의 큰 그림까지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는 막힘없이 묘사한다. 긴박하게 읽힌다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심리에 대한 분석이 돋보였다. 둘 다 ‘악마’적인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많은 이들을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는지는 확실히 달랐다. 히틀러는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부추겼고 스탈린은 어처구니 없이 내몰았다. 나에겐 스탈린 같은 지도자의 악랄함이 더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가 내린 대부분의 명령은 “죽어라”라는 것과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측 사상자가 독일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병사들의 분노는 스탈린에게로는 결코 향하지 않았다.
그 대신 두 배, 세 배로 강하게 침략군들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모스크바 공방전은 약 180여 일간의 전쟁의 소용돌이에 진입하게 되었다.
글·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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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