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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의견 수렴 거쳐 합의

서양 법언(法諺)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면서 우리 정부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바로 몇 분 남아 있지 않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 한 해에만 아홉 분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이제는 평균 연령 89세인 마흔여섯 분의 피해자들만이 생존해 계신 현실에서,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피해자분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해왔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이번 협상 타결까지 무려 2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실례로 필자가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간 국장급 협의의 경우 2014년 4월 개시한 이래 최종 타결 시점까지 공식적인 협의만 해도 총 12차례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박근혜정부는 출범 후 총 10차례 개최된 한·일 외교장관회담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면서 외교적 노력의 강도를 높여왔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2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가능한 한 조기에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는데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이번 타결의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했다.

이후 한·일 양측은 2개월여간 세 차례 국장급 협의를 갖는 등 협의에 속도를 냈고, 지난해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최종 타결을 선언할 수 있었다.

이번 합의 내용은 ①일본 정부의 책임 명확화 ②내각총리대신 명의의 공개적, 공식적 형태의 사죄와 반성 표명 ③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이행조치라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3대 핵심 요소 측면에서, 과거 일본 정부가 제시했던 그 어느 방안보다 진일보한 것이자 피해자들의 요구 사항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주요 타결 내용과 의의는 이미 언론에 충분히 보도했고, <위클리 공감>에도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337~340호 참조).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성의 있는 자세와 태도 변화를 요구해온 국제사회도 이번 한·일 양국 간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합의 발표 직후 백악관과 국무부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를 환영하고 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했으며,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를 포함한 다수의 미 의회 의원들이 환영 또는 축하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7일 한·미 정상 통화 시 위안부 문제 합의를 축하하며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또한 유엔, 유럽연합(EU),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 등지에서도 이번 합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이 밖에도 무라야마 일본 전 총리, 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 등과 같이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해온 인사들도 이번 합의를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으며, 특히 일제 식민지배의 과오를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해 전후 한·일관계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 측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 이번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동인이라고 분석했다.


위안부피해자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지난해 12월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해 협상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합의에 관한 몇 가지 오해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와 달리 국내 일각에는 이번 합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남아 있고, 이러한 비판의 상당수는 합의의 본질적인 내용이 아닌 부수적 사안을 대상으로, 그것도 오해와 억측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위안부 협상을 담당한 실무 국장으로서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따라서 이번 합의와 관련해 국내 일각에서 자주 제기하는 몇 가지 오해와 억측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피해자분들의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협의를 추진했다는 주장인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간 정부는 피해자 및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본 측과의 협의 과정에서 이러한 피해자 측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했다.

한 예로, 2014년 1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방문해 피해자 측 의견을 청취했으며, 이를 반영해 2014년 3월 제25차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외교장관 차원에서는 최초로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천명한 바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외교부 차원에서 15차례에 걸쳐 피해자 및 관련 단체와 협의, 면담, 접촉 등을 갖고 의견을 수렴했으며, 담당 국장인 필자도 협상 진행 과정에서 관련 단체 관계자를 수시로 접촉하며 피해자 및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구했고, 주말을 이용해 대구, 창원, 통영 등 지방에 소재하는 단체를 직접 방문해 의견을 청취하기까지 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국내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여성가족부에서도 장관이 2013~14년 국내 생존자 전원(당시 50명)을 방문하고, 지난 3년간 위안부 문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면서 피해자 단체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계속 청취해왔다.

정부는 이러한 의견 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그간 일본과의 협의 과정에서 ①일본 정부 책임 인정 ②명확하고 공식적인 방법에 의한 사죄 ③일본 정부에 의한 피해자 배상 요구라는 피해자 및 피해자 단체들의 핵심 요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이번 합의 내용은 이러한 피해자 측의 핵심 요구 사항에 매우 근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한·일 간 타결 내용에 대해 피해자분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끼실 수 있겠으나, 상대가 있는 외교 협상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에서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라는 점은 피해자분들이나 국민들께서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셨으면 한다.

둘째,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약속했다든지, 소녀상 이전을 조건으로 10억 엔을 받기로 했다든지 하는 일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어디에도 그러한 내용이 없는데, 이렇듯 근거 없는 내용을 계속 제기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합의로 설립될 국내 재단에 대해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군의 관여 사실 인정 ▶일본 정부 책임 표명 ▶내각총리대신의 공개적, 공식적 형태의 사죄 ▶반성을 뒷받침하는 이행조치로서 소녀상 문제와는 무관하며, 일본 정부 역시 소녀상과 10억 엔 거출은 무관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셋째, 정부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약속해 우리에게만 부담을 지우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약속 때문에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서 모두 손을 뗄 수밖에 없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수도, 미래 세대에게 역사교육을 실시할 수도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주지하다시피 ▶한·일 양자 간 외교 현안일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의 글로벌 이슈 ▶기억돼야 할 역사의 교훈으로서의 역사성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명예 회복이라는 복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이번 합의로 타결된 것은 한·일 양자 간 외교 현안으로서의 위안부 문제로서, 그 주된 목적의 하나는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명예 회복, 상처 치유에 있다.

따라서 연구와 교육 등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고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과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에 기여하는 것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과는 무관하며 정부는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합의의 내용과 기본정신, 즉 일본이 약속한 조치들이 성실히 지켜진다는 전제 아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양국 정부 차원에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 것이며, 특히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것은 우리 정부뿐 아니라 일본 정부에도 해당되는 쌍방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피해자인 우리보다는 가해자인 일본이 얼마나 성실히 합의를 이행해나가는지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대한 판단 준거가 될 것이며,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에는 일본이 합의를 번복하거나 역행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것이다.


위안부합의


합의 이후의 과제

이번 합의 결과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상'의 결과는 아니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큼은 피해자분들이나 국민들께서 헤아려주셨으면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합의 내용이 충실히 이행되어 남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 치유'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는 일이라 하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피해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해 정부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또한 한·일 양국이 신뢰 속에 이번 합의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올해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 본 기고는 한국외교협회 계간 <외교> 116호(2016년 1월 발행)에 실린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이상덕

·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2016.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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