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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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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매복은 매복(埋伏)을 해야 볼 수 있다.”

7년간 참매를 쫓아다닌 사진작가의 말이다. 워낙 경계심이 강한 참매를 사진에 담는 복을 누리려면 숨죽이고 들키지 않는 인고의 시간이 참으로 길다는 이야기다. 고통을 승화시킨 말장난이기에 공감이 간다. 매목 수리과의 조류인 참매의 사냥은 다른 맹금성 조류와는 확연히 다르다. 황조롱이나 송골매는 높은 하늘에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내리꽂는 사냥을 하지만 참매는 갈대숲이나 나뭇가지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곁에 다가오는 순간 덮친다. 참매 또한 매복의 전문가인 셈이다. <천년의 기다림, 참매 순간을 날다>는 매복자를 포착하려는 또 다른 매복자의 고독한 싸움의 기록이다.

무언가에 붙들려 그 심연을 보고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박웅도 그러하다. 원래 산을 찍었던 그가 어느 해인가 사진을 찍으러 올랐던 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난 ‘잣까마귀’의 노랫소리에 반해 새 사진에 눈을 돌린 것이 10년 전이고, 그 대부분을 참매에 바쳤다. 이 책은 여름이면 숲속에서 둥지 앞을 지키고, 겨울이면 허허벌판 사냥터에서 참매만을 좇은 저자가 그동안 모은 참매의 생태와 사냥 습성에 대한 기록과, 사진을 묶어 펴낸 것이다.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던 나는 동북3성(만주) 벌판에서 땅굴을 파고 꽁꽁 언 주먹밥을 깨물며 평생을 호랑이 사진에만 몰두했던 한 사진작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왜 산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참매가 토끼 뺨칠 정도로 경계심이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덩치가 커서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기러기 떼에 섞여들어 있다가 역시 기러기 떼의 덕을 보려고 마음놓고 들어온 쇠오리를 사냥하는 참매는 초원의 제왕 사자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매복을 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참매를 노리는 또 다른 사냥꾼이 있다는 점에선 다르다. 책에는 갈대숲에서 몸을 드러낸 쥐를 노리고 갈대밭에 내려앉았던 황조롱이가 공교롭게도 똑같은 쥐를 노리고 숨어 있던 삵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이 나온다. 참매와 같은 맹금류에도 분명 적은 존재한다. 작가가 포착한 참매의 짝짓기는 매우 신기하다. 수컷이 먹이를 잡아다 주면 기다리고 있던 암컷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 먹을 때를 기다리지 않고 한창 먹는 중에 교미를 한다. 다른 맹금류들 또한 수컷이 먹이를 주고 교미를 하는 것은 같지만 먹는 중에 교미하는 것은 참매뿐이다.

이 책은 또한 읽는 사람을 은근히 조바심치게 한다. 참매란 놈이 참으로 틈을 주지 않아서이고, 그걸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작가의 뚝심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일까, 기다림이 보상을 받을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한번은 카메라 렌즈를 바꾸기 위해 위장막 속으로 들어왔던 렌즈가 다시 나가는 움직임을 어미 참매가 보았다. 지체하지 않고 위장 텐트 쪽으로 날아와 귀청이 찢어져라 날카로운 경계의 소리를 질러댔다. ‘꺅아꺅’ 하는 날카롭고 높은 참매의 울음소리가 낙엽송 숲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긴장감이 돌았다. 섧게 울던 뻐꾸기가 울음을 멈추고, 짝을 찾던 흰배지빠귀의 소리마저 끊겼다. 참매의 노여움을 알 리 없는 매미만 목청껏 울어댔다.

글·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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