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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필자가 살고 있는 다가구 주택엔 이십 년 전에 심어놓았다는 은행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 올해는 유독 은행알이 굵고 탐스러워서 이웃 사람들이 눈독을 들였고, 3층 베란다 창문을 열면 나뭇가지가 밀고 들어올 정도로 잘 자란 나무였다. 은행나무의 무성한 잎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고, 간혹 우듬지에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보면서 메말라버린 시적 감성에 물이 오르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원재훈 시인 

▷원재훈 시인(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집주인 아저씨는 은행나무를 자랑스러워했다. 집을 지으면서 준공 검사를 위해 작은 묘목을 심었는데 이제는 3층 주택보다 높이 자랐고, 기둥이 우람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서다. 뒷집 할머니는 한여름엔 은행나무 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이 동네에서 제일 시원한 곳이라고 부채질을 하면서 웃곤 하셨다. 은행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 군대에 가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다.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움이 트고 나뭇잎이 돋아나온다. 그 작은 나뭇잎을 보면 ‘은행나무야, 너였구나’ 하고 인사도 나누었다. 주인아저씨는 팔순이 가까운 나이였지만 건장하고 건강하셨다. 올여름에 인사를 드리면서 당신의 팔 근육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그분이 그만 덜컥 돌아가시고 말았다.

시내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급사하신 것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은행나무도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밖이 시끄러워 창문을 열고 보니 벌목 차량이 요란하게 정차하면서 인부들이 전기톱과 갈고리 등의 장비를 들고 내렸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일층에 새로 들어온 집이 은행나무를 전부 잘라버리고 거기에 테라스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미 집주인과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지하에 세 들어 사는 도배장판 전문가 아저씨는 시장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고, 환경단체에 알려서라도 이 무자비한 벌목 현장을 막아야 한다고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작업 의뢰를 받고 온 사람들은 여유롭게 작업을 진행했다. 아침에 시작한 벌목 작업은 점심이 되기 전에 끝이 났다. 불도저가 나무를 찍어 가지를 쳐내고 떨어진 가지를 전기톱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차량에 실었다. 아름다웠던 은행나무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이테와 나무 향이 있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오랜 세월 깊게 내린 뿌리 때문에 그것마저는 제거하지 못한 모양이다. 집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을 급사라고 하는 것인가?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가을 햇살은 여전히 밝고 환했다. 황무지가 된 미국의 생태를 소설로 다룬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생태가 무너지면 인간의 몸, 그리고 영혼과 마음도 결국은 썩은 송어처럼 어디엔가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나무 그루터기는 아직 남아 있다. 이 그루터기에 한 줄기가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루터기에 앉아 있으니…, 사람이 사라진 자리보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가 더 아프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지금쯤 은행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사랑했던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올가을에는 낙엽을 밟아야겠다. 숲 속을 산책하며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온전하게 살다가 떨어져 마른 잎을 한 장 가져와야겠다.

· 원재훈 (시인)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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