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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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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더위탓에 머리에 송골송골 땀이 차는 아들 손을 잡고 이발을 하고 돌아오는 길. 녀석의 머리가 까칠까칠 밤톨 같다. 까끌까끌 스포츠머리의 촉감이 재밌는지 녀석은 연신 자기 머리를 밑에서 위로 쓸어 올린다. 그 시원함이 내게도 전달된다.

옹알이를 하고 또 뒤집기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초등 2학년이 된 아들은 이젠 제법 든든한 역할을 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항상 위로해줘야 하지만, 이젠 내가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어깨를 다독이고 안아주며 볼에 입 맞춰주는 아이는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걱정의 눈길로 한참을 쳐다보는 아이. 그럴 때면 나는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힘을 낸다.

때때로 새치 때문에 머리가 가려워질 때도 있다. 아이는 얼른 침대 머리맡에 올라 양반다리를 하고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라는 손짓을 한다. 고사리손은 가위손이 되어 머리칼 구석구석을 뒤져 새치를 뽑고는 내 손에 쥐어준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문 손잡이에 오른쪽 눈 밑을 찧었을 때는 간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밴드를 붙이고도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V’자를 그리며 활짝 웃는 입학식 사진은 입학의 떨리고 뿌듯한 추억보다는 전날의 아찔함을 떠오르게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새벽 응급실을 드나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때 펑펑내리는 눈이 신기한지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열이 난다며 칭얼대던 아이가 열성경련을 일으켰을 때 나는 공포에 떨었다. 영화 속 슬로비디오 장면이 실제에서도 작동하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눈길을 헤치고 병원으로 달릴 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깨어났을 때 나도 모르게 손깍지 끼고 흘린 감격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녀석이 갓 돌을 지났을 때 빨래하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세숫대야에 자기 양말을 담고 물을 받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아이는 2007년 9월 첫날, 오랜 산통 끝에 아침 햇살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났다.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한쪽 눈을 깜빡였다. 그해 가을 세상은 온통 아들 녀석 이야기로 가득한 것 같았다.

이제는 제법 컸다고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는 병아리가 중닭이 되어가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다. 어느 날 ‘장닭’이 돼 높이 홰를 치는 날이 오면 아이는 나를 조금씩 잊어가겠지. 그때는 그저 ‘엄마와의 어릴 적 추억은 행복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등교한 아이의 사진첩을 보며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지난 8년간 내게 큰 기쁨과 위로를 준 녀석이 오늘따라 참 고맙다. 시인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말을 아이에게서 느꼈다면 남편은 서운해할까.


글 · 문채연 (주부 서울 성북구 화랑로)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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