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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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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있었다.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고 품성도 선한 친구지만 공부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 우산이나 필기구를 잃어버리기 일쑤요, 교복은 밥 먹다 흘린 자국 천지라 친구들 사이에서 칠칠치 못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중간고사 때 그 친구네 집에서 먹고 자며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아침, 친구 오빠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야, 너는 계집애가 욕실 꼴이 이게 뭐냐?”

하긴 나도 놀란 터였다. 친구가 들어갔다 나온 욕실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샴푸 뚜껑은 아무 데나 굴러다니고 머리카락은 한 움큼 수챗구멍에 엉켜 있고, 하다 못해 자기가 쓴 세숫대야 물도 버리지 않은 채였다. 아침마다 그 꼴을 봐야 하는 오빠로서는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오빠의 언성이 높아지자 이내 어머니가 들어왔다.

오늘은 기어코 경을 칠 모양이구나, 남의 집에 얹혀 있는 나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무란 것은 뜻밖에도 친구가 아니라 오빠였다.

“네 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공부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야. 그만한 흠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니?”

“어머니! 저러다 쟤, 시집가서 쫓겨올 거라구요!”

오빠가 불퉁거리며 한마디 보탰지만 어머니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말아라. 시집가기 전에 내가 먼저 다 까발리고 그래도 좋다는 집으로 시집보낼 터이니.”

국립대 의대 교수가 된 친구는 지금도 여전하다. 살림은 나 몰라라, 시어머니가 대신 살림을 살아주는데, 출근하고 난 침실이 가관인 모양이었다. 세탁할 속옷까지 방 아무 데나 던져놓고 출근하는 통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만나기만 하면 입을 모아 흉을 볼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사랑한다. 친구는 경제관념이 없다. 재테크는 고사하고 돈 쓸 줄도 모른다. 은행 한번 가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월급을 통째로 시어머니에게 주고 용돈을 받아 쓴다. 몇 푼 안 되는 용돈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이 주머니, 저 주머니, 친구 옷을 뒤지면 십 수만 원 수금은 거뜬할 정도란다. 그렇게 순진한 며느리이니 이런저런 허물도 그냥저냥 덮어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친구 어머니로부터 배운 게 많다. 보통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완전무결하기를 바란다. 공부도 잘하고 예절도 바르고 똑부러지고 동시에 사회생활도 잘하기를 말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약간의 흠을 가지고 있다. 꼼꼼한 사람은 추진력이 없기 십상이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꼼꼼하지 않아 실수가 잦기 십상이다. 조지프 캠벨이 <신화의 세계>에서 지적했듯 ‘당신의 악덕은 곧 당신의 미덕’인 것이다.

미덕과 악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꼼꼼한 사람은 세밀하게 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성격이기 때문에 꼼꼼하다. 과감성을 갖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고기의 부레는 텅 빈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빈 공간이 있어 물고기는 떠 있을 수 있다. 흠이든 틈이든 악덕이든, 사람 역시 그 빈 곳이 있어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친구 어머니는 딸의 칠칠맞지 못함이 미덕의 이면임을, 딸을 숨 쉬게 하는 부레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배우지 못했으나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다.

글·정지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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