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태준에 대해서는 나는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冊’답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나, 골동품 모으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그의 상고(尙古) 취향이 어딘가 지나치게 멋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행열차>를 보고 난 후 상허 이태준의 다정다감한 인정주의와 형용사와 부사어를 너무나 완벽하게 구사하는 그의 문장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처음 보는 낯선 이국 물정을 세세하고도 아름답게 잡아내는 눈길의 맛이 아주 좋은 책이다.
이태준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의 유년시절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이 책의 초반부는 아주 소중한 읽을거리가 되어 준다. 조실부모하고 혼자 힘으로 막일을 하며 돈을 벌어 마침내 소설가로 자수성가하기까지의 일들이 재빠르게 회상된다.
“엿장수의 엿가새처럼 크고 투박스런 내 두 손을 내려볼 때마다 나는 눈물겨워한다. 더구나 남들이 ‘무슨 손이 그리 험해!’ 하고 숭을 볼 때마다 나는 더욱 눈물겨웁다. 내 손은 아직 뼈마디도 굳기 전부터 내 한몸을 먹여살리느라고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을 하여 왔는가. 이가 끓어도 내 손이 잡아 주었고, 배가 고파도 내 손이 둥거지(등걸)를 패고, 눈을 쓸고, 요강을 부시면서 내 목구멍에 밥을 얻어 넣어 주었다.”
실제로 이태준은 6세와 9세에 부모와 고향을 잃고 각지를 떠돌았다.
안협(安峽) 모시울이라는 산골에서 일하던 집은 지게도 없는데 나무를 해오라 시켜 그는 다른 집 아이들이 나무를 다 하고 저녁을 먹을 무렵 지게를 빌려 낮에 해 놓은 나무를 실어오곤 했다. 한번은 종일 패 놓은 둥거지가 하나도 없이 없어져 빈 지게로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는 “나무를 잃어버린 그것보다도 나무 안 하고 어디 가서 놀다 왔다는 말이 분하였었다”라고 회상한다.
이렇게 험하게 자란 그가 어떻게 이렇게 다정한 산문가가 됐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글이 있다. ‘파초’라는 글을 보면 이태준의 집마당에는 일대에서 제일 잘 자란 파초가 있었다. 이태준은 열두 자도 훨씬 더 넘게 지붕과 함께 솟은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를 명상하곤 했다.
어느 날 앞집 사람이 와서 “저렇게 꽃이 나온 것은 이듬해 죽으니” 어서 팔라고 했다. 상허는 “죽을 때 죽더라도 보는 날까진 봐야지 않소?”라고 한다. 그러자 “5원쯤 받게 팔아줄 테니 미닫이에 비 뿌리지 않게 챙이나 해 다시죠”라고 재촉했고 상허는 그러면 파초에 비 맞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답한다.
“소를 길러 일을 시키고, 늙으면 팔고, 사간 사람이 잡으면 고기를 사다 먹고 하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라 이제 죽을 운명의 파초니 5원이라도 받고 팔아준다는 사람이 그 혼자 드러나게 모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코 바람에 너울거리는 파초를 보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볼 때 나는 내 눈이 뜨거웠다.”
뜨거워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서 가슈”라고 등을 떠미는 상허에게 “참 딱하십니다”라고 입맛을 다신 앞집 사람의 말에서 그 의미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글·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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