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새해가 밝았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한다. 2014년 12월 31일과 2015년 1월 1일은 그냥 하루의 차이일 뿐이라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경계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주 가상의 경계에 지나친 의미를 두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경계는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새해에 필자는 쉰 살이 되었다. 물론, 마흔 아홉이었던 12월 31일에서 쉰이 된 1월 1일은 그냥 하루가 지난 것뿐이다. 하지만 2015년 1월 1일은 앞으로 10년 동안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첫날이니 필자에게는 의미가 깊다.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며 어떤 답을 찾게 될까 자못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온 날이었기 때문이다.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을 보면 공자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于學), 서른에 뜻을 세웠으며(而立), 마흔에 미혹됨이 없었고(不惑), 쉰에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知天命),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耳順), 일흔이 되니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것이 없었다고(從心所慾不踰矩) 했다. <논어>를 처음 공부했던 대학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이 말이 30대 후반을 지내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흔들거리며 불안했던 내게 가장 큰 용기를 준 말이 되었다.

30대 후반의 어느 날 ‘불혹’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하면서 공자같이 훌륭한 분도 마흔이 되어서야 불혹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도 마흔이 되어 마음의 중심이 잡히셨다는데, 공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내가 30대 후반에 왜 마음의 중심이 잡히지 않을까 고민하다니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40대가 진심으로 기다려졌다.
그날부터 <논어>의 공자 회고담은 필자에게 삶의 단계마다 이루고 싶고 기대되는 ‘미션’이 되었다. 덕분에 나이 드는 일이 기다려졌다. 쉰이 기다려진 것도 예순과 일흔이 더 기다려지는 것도 공자가 말한 삶의 과제들이 매력적인 탓이다.
이제 하늘이 내린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기쁘다. 고속도로 위 전복 사고로 서른여섯의 생을 마감할 뻔했을 때 필자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하늘이 왜 나를 이렇게 멀쩡하게 살려주었을까’였다. 그래서 50대가 기다려졌던 것 같다.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50대가 되어 무엇보다 감사하다.
솔직히 고백하면 더 기다려지는 것은 50대를 통해 천명을 알게 된 후 맞게 될 60대와 70대다. 60대가 되면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된다니, 그리고 70대가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하나도 없게 된다니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과제들이 앞에 놓여 있으니 빨리 60대와 70대를 살아보고 싶다. 물론, 공자처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멋지게 요약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80대가 기다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글·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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