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평범한 과일꽃, 중국에선 ‘돈꽃’

1

 

2조정래 소설 <정글만리>는 지난해 유일하게 100만부 넘게 팔린 책이다. 급성장하는 중국을 무대로 한국·미국·일본 등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치열한 각축전을 그렸다.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과 김현곤, 중국의 세관 고위관료 샹신원과 신흥 부자 리완싱, 동양계의 젊은 미국인 여회장 왕링링과 한국계 건축가 앤디 박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여기에 베이징대 유학생 송재형이 리완싱의 딸인 리옌링과 만들어가는 로맨스를 더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기존 소설의 틀이 아닌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제목은 약육강식을 상징하는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설에는 중국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상과 함께 빈부격차, 관리들의 부정부패, 난개발, 짝퉁, 환경오염 등 어두운 면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정치만 제외하고 자본주의보다 더한 자본주의적인’ 중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마오쩌둥과 함께 돈은 중국의 2대 신(神)이라고 한다.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배꽃에 얽힌 이야기다.

“아빠, 우리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에 가면 꼭 빼먹지 않고 들르는 필수코스가 있어요. 그곳이 어딘지 아세요? 이화여자대학교예요. 거기 이화가 그려진 벽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예요.”(3권 141쪽)

광저우의 큰손 리완싱은 딸 리옌링의 이 같은 귀띔에 프랑스 명품 회사와 함께 배꽃을 그려넣은 고급 지갑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중국에서는 이화(梨花 : 중국 발음 ‘리화’)가 ‘돈이 벌리다’ ‘돈이 불어나다’라는 뜻의 ‘利發(리파)’와 발음이 너무 닮아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돈꽃’이라는 것이다. 그런 배꽃을 중국인이 좋아하는 새빨간 바탕에 황금빛으로, 역시 중국에서 돈을 뜻하는 여덟(八) 송이를 옆으로 누운 8자로 그려넣자 중국인이 열광한 것이다. 돈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욕망을 파고든 상술이다.

우리나라에서 배꽃은 고려 말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에서처럼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흰꽃 정도의 이미지다. 배꽃은 과일꽃이지만, 순백의 꽃잎 5장에 검은 점을 단 꽃술이 조화를 이루어 품격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은은한 향기도 좋고, 특히 5월 산들바람에 하얀 꽃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배꽃이 전혀 다른 이미지인 것이다.

소설에는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중국의 과거는 시안에, 중국의 현재는 베이징에, 중국의 미래는 상하이에 있다”, “중국에서 6개월을 살면 중국을 잘 안다 하고, 1년을 살면 자기 분야에서만 안다 하고, 10년을 넘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등과 같이 작가의 취재와 통찰력이 빛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1990년대 초반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고 2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료를 모은 결과물이라고 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낸 작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다. 그렇지만 <정글만리>를 읽은 소감을 말하라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는 도움을 받았지만 소설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료집에 약간의 스토리를 가미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약하니 책을 한번 잡으면 놓지않게 만드는 흡인력도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소설의 형식을 빌린 중국 소개서’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6.23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