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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1

 

3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낯선 청년이 타기에 “안녕하세요?”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지만 고개를 ‘까딱’ 하더니 한편으로 선다. 3층에 불이 들어왔다. 3층이면 금방 내리겠지만 뭔가 거북함 때문에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서고 문이 열렸다. “안녕히 가세요”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도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이 친구가 그냥 쑥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가끔 마주치는 꼬마가 있었다. “안녕?” 하고 인사를 했더니, 아주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얘가 몇 층에 사는 아이더라? 가끔 보기는 하는데 참…. 학원에 가나? 한번 물어볼까? 물어봐서 뭘 어쩌지?’ 어색한 침묵이 깨진 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린 다음이었다. “안녕히 가세요”하고는 현관 쪽으로 총총 걸어간다. “어, 그래 조심히 다녀라.”

참, 이상하다. 이 동네 이사 와서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앞집 아저씨하고 아주머니, 11층 어르신 내외, 아니 10층인가? 여하튼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는 분들이 불과 몇 분 되지 않는다. 얼굴을 기억해도 몇 층 사시는 분인지, 몇 호 사시는 분인지 잘 모른다.

내가 무심한 걸까, 원래 아파트가 무심한 걸까? 더러는 애써 기억도 해 보지만 얼마 못가 잊어버린다. 힘들게 기억해 봐야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어서 그런 것 같다.

2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운동하러 나가는 도장의 원장님이 새로 수련생이 들어왔는데 주소가 나랑 같은 아파트란다. 건물 한 동짜리 조그만 아파트기 때문에 아는 분일 수도 있다. ‘어떤 분일까?’ 며칠 후 도장에 들어서니, 원장님이 한 아주머니하고 인사를 시킨다. 바로 그분이라고.

나 :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 “네. 안녕하세요? 운동 나오신다는 말씀 들었어요.”

“네. 몇 달 됐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뵌 적이?”

“저는 몇 번 뵌 것 같은데요.”

“저랑 같은 라인이 아니신가 보네요.”

“…”

순간 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았다. ‘이상한데, 혹시 같은 라인인가? 그럼 내가 말을 잘못한 거지? 그냥 몇 호에 사시냐고 물을 걸 그랬나?’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묻기도 어정쩡했다. ‘만일 같은 라인에 사는 분이라면 엄청난 실수다. 이걸 어쩌나? 만약 우리 라인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 정신을 집중하고 운동을 해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

아파트는 참 이상한 곳이다. 그냥 살기는 편한데, 앞집하고 인사나 할 뿐 왕래도 없고 친분도 없다. 몇 년을 살아도 그냥 앞집일 뿐이다. 위아래는 더하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아파트와는 관계없는 말이다. 집사람도 그랬다. 슈퍼에 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더란다. “저 아세요?”라고 했더니, “에이, 같은 아파트 살잖아”

그러시더란다. “어머, 죄송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젊은 엄마하고 귀엽게 생긴 여자애 둘이 탄다. “안녕하세요? 안녕?” 5층에 불이 들어온다. ‘그럼 505호인가, 아니 506호인가? 아, 정말이지 아파트는….’ 이웃사촌이 그립다.

글·정재환 (방송인·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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