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배우 이병헌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사소하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도로의 무법자들을 혼내 주는 장면이 있다.
앞차가 조금 천천히 간다고 뒤에 바짝 붙어서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고, 그것도 모자라 창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피우던 담배꽁초를 던지면서 욕하는 녀석들…. 영화에서처럼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를 운전자라면 한두 번 경험했을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냥 당하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병헌씨는 속력을 멋지게 내서 그 무법자들을 쫓아가고, 한강 다리 위에서 녀석들의 차를 가로막아 서곤, 양복을 단정하게 여민 다음 신사의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다가가서 세 놈의 ‘아구통’을 날리고 팔을 꺾으며 발로 차 버린다.
광화문 사무실에서 여성 편집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공감하면서 그간 운전하면서 당한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이 너무나 거칠고 협박하듯 욕을 하고 간다는 거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그때는 무섭기도 해서 그냥 돌아오는데 생각하면서 할수록 억울하고 분해서 화병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나 역시 몇 번 운전을 하다가 도로 위에서 싸울 뻔한 일이 있지만, 그냥 욕을 하거나 싸우고 나서의 창피함을 먼저 떠올리곤 그냥 가 버린다. 간혹 분한 일이 있으면 두고두고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애들도 아니고 어른들이 도로에서 뭘 어쩌겠는가 싶기도 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깻잎 한 장 사이로 갑작스럽게 휙 끼어들어 오기, 보복운전 하면서 위협하기, 창문 열고 오물 버리기, 갑자기 경적 울리기, 기타 등등.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도로에선 차량과 차량의 적당한 거리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서 피해자들이 울분을 삼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지 않았더라면 교통사고는 지금보다 1백 배는 더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운전자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아서이다.
차간거리를 유지하고 가는 것은 운전의 기본인데,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엔 불법이 난무한다. 차간거리가 바로 사람의 거리이고, 문화의 거리이다. 교통질서가 어지럽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경제·정치의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도로 신호에 비보호가 많다고 한다. 웬만한 거리는 비보호 신호로 해 놓으면 운전자들이 서로 양보를 해서 먼저 가게 하고, 그런 마음자리로 교통질서가 원활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온화하다.
오늘 아침에 일산 마두도서관 앞에서 어떤 차가 급정거를 하면서 무단횡단을 하는 어떤 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8차선도로의 한가운데 차를 정차시키고 차에서 내려 운전자가 도서관 쪽으로 달려간다. 무단횡단자는 도망을 간다.
아이고, 참. 저걸 어쩌나 싶다. 저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운전자는 도로 위에서 갑작스러운 사람의 출현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놀란 운전자는 화가 나서 참지를 못한다. 보통 차창 한 번 열고 욕을 하거나, 그냥 가는 것이 좋다. 그럴 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분노가 눈을 가리지 못하게 하자. 차간거리를 유지하고, 내 마음과 분노의 거리를 멀리하면 언젠간 우리나라 도로 전체가 비보호 신호로 바뀔 것이다. 오늘도 복잡한 도로 위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잠시 한다.
글·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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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