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을 햇볕 따스한 날, 전교생이 10명뿐인 산골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 낭송회가 열렸습니다. 낭송할 사람들은 시인도 아니고 유명인사도 아닌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도토리만 한 어린이 몇 명뿐이지만 자그만 플래카드도 내걸리고 마이크도 세워 놓았습니다. 농사일에 얼굴이 검게 그을린 사람들이 호미를 잠시 내려놓고 잔디밭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햇사과처럼 뺨이 발그레한 산골 어린이들이 입을 짝짝 벌리며 자작 동시를 낭송하였습니다.
또 마을도서관에서 한글 기초를 배운 김순덕 할머니도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떠듬떠듬 읽었습니다. 돋보기를 콧등에 걸치고 틀니를 덜그럭거리며 시를 읽을 때는 객석이 숙연해졌습니다. 평생 자신의 손으로 이름 석 자 쓰는 게 소원이었던 김 할머니가 드디어 한글을 배워 이 아름다운 가을에 시 한 수 지어 읊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들이 아직 있습니다.
세계에는 문자가 없는 민족도 많이 있습니다. 글이 없으니 역사책이나 전통 문학책도 읽을 수 없습니다. 말과 글은 그 나라 문화의 뿌리인데 간혹 뿌리를 다치게 하는 곱지 않은 말, 바르지 않은 말을 별생각 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언행이 거칠어지는 것과 학교폭력 문제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속어나 욕설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의 영혼을 다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늘 고운 말을 쓰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마을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아침에 동시를 한 편씩 읽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점점 메마르고 거칠어 가는 청소년들의 정서를 시를 통해 조금이라도 순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동시문학회 회장인 이준관 선생님께서 맨 처음 시작한 ‘나팔꽃 학교’라는 운동인데, 이젠 전국에 있는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들도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요즘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피로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모두 ‘자연치유 체험’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을, 손에 조그만 시집 한 권 들고 다니는 건 어떨까요? 대다수 사람은 시 읽을 시간이 없다고 손사래부터 칩니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전철을 타고 가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느리게 시 한 편을 읽는 여유가 어떨까요?
프랑스에서는 시낭송하는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고 학교에서도 시낭송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할 정도라고 합니다. 시를 읽는 것이 올바르게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뿐만 아니라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언어는 작게 보면 개인의 영혼일 뿐 아니라 크게 보면 그 나라의 영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일은, 우리 말과 글의 주인인 우리들의 의무이자 동시에 행복이 아닐까요?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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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