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인기가수main

 

인기가수big음악역사는 누가 써왔는가. 언제나 대중의 환호를 만끽하며 인기차트와 시장을 누비는 스타들은 즐비하지만 그들 모두가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기록되는 특전은 당대에 누린 인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흐름과 분위기를 견인한 인물에게 주어진다. 역사는 절대적으로 도전자와 실험가를 섬긴다. 우리 대중음악 역사의 몇몇 인물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왜 밴드 ‘산울림’과 ‘사랑과 평화’가 전설로 기억되는가. 다른 밴드가 대마초 파동으로 록이 위축된 현실에서 안전한 트로트를 선택할 때 산울림은 매우 직설적이고도 폭발적인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리더 김창완은 말한다. “그때 사람들이 팝송을 들었던 것도 실은 팝송이 대단한 음악이라기보다 우리 가요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울림이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울림은 제대로 된 우리 가요, 포효하는 청춘의 록을 만들려는 욕망의 소유자들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1980년대를 가른 밴드 ‘들국화’가 겨우 2장의 앨범을 가지고 “진정한 록이 돌아왔다!”는 역사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도 지향의 측면에서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의 ‘사랑과 평화’는 그 특유의 펑키 사운드가 생경한 나머지 일각에서는 반응이 시큰둥했다.

기타리스트 최이철은 “바가지 엎어놓고 긁는 소리를 낸다며 그 시절 아줌마들은 싫어했다”고 술회한다. 만약 ‘사랑과 평화’가 당시 유행하고 있는 패턴의 가요를 따랐다면 우린 ‘한동안 뜸했었지’나 ‘장미’ 같은 멋진 음악을 상당기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평소 좋아하고 실험해 왔던 스타일의 음악을 현실에 대들 듯 과감하게 풀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랑과 평화’는 나중 1988년 공전의 히트를 친 ‘울고 싶어라’가 있지만 결코 스타덤, 부의 영예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들의 편은 현실이 아닌 역사가 들어준다. “펑키 사운드를 가요와 접목해 새로운 패턴을 제시했다”는 헌사와 함께.

고 유재하는 앨범이 딱 한 장이지만 “한국음악계는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거대한 찬사가 주어지는 것은 가요에 없던 코드로 곡을 쓰고 섬세한 편곡으로 한국형 팝 발라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서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중가요를 하고자 했다.

진실하게
서태지는 과감하게 한국말로 랩을 시도한데다 감각적인 댄스음악이 판치는 현실에 강력한 록의 화염을 토해냈기에 ‘문화대통령’인 것이고 국산 힙합어법을 창조한 ‘듀스’는 ‘한국적 힙합의 시작자’로 그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고 김현식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포텐’을 증명했고 ‘말달리자’의 ‘크라잉 넛’은 한국에서도 펑크 록이 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상기한 가수들은 스타들이지만 그들처럼 다수 대중의 성원을 받지 못했어도 ‘어떤 날’, ‘시인과 촌장’, 인디 밴드 ‘언니네 이발관’, 이상은, 장필순은 늘 명반 아티스트로 거론되곤 한다. 이들의 음악은 기존에 없던 것들이다.

그들은 당장의 트렌드와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표현영역을 구축했기에, 즉 도발하고 실험했기에 역사의 인정을 획득한 것이다.

담대하게 나서고 진실한 자기 목소리를 내야 바뀐다. 당장만을 외치면 인기가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의 아티스트는 될 수 없다. 요즘 우리 가수들은 어떠한가. 진실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인가, 돈과 성공을 탐하는 방법인가. 대담하고 옹골차게 덤비고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싱겁고 식상한 음악이 너무 많다. 새로운 게 없다.

글·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