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요 몇 년 새 몹시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엉뚱한 데다 존대를 하는 어법이다. 대관절 누가 언제 이런 엉터리 존대법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TV가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커피 한 잔 주세요.” / “3천원이세요.”
“시럽 좀 넣어 주세요.” / “시럽은 저쪽 테이블에 있으세요.”
장담컨대 이 커피집 직원은 잔돈을 거슬러 주며 명랑하고 공손한 말투로 “여기 2천원이세요”라고 외칠 것이다.
국어의 존대법에는 주체존대와 객체존대, 상대존대가 있다. ‘주체존대’는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것으로, “선생님께서 오신다” 같은 존대법이다. ‘객체존대’는 문장의 목적어나 처소격 조사가 붙은 부사어를 높인다. “이 물건을 아버지께 전해 드려라” 같은 문장이다.
‘상대존대’는 대화의 상대를 높이는 것으로 “별일 없으십니까?” 같은 어법이다. 요즘의 엉터리 존대는 높일 필요가 없는 사물을 존대하는 ‘주체존대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실로 방대한 영역에 이 주체존대의 오류가 퍼져 있다. 요즘 골프장에서는 OB(Out of Bounds·공이 골프 코스를 벗어나는 것)가 나면 캐디가 “OB세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내가 친 공이 OB가 난 것도 화가 나는데 캐디는 OB에다가 존대를 하고 있으니 짜증이 치민다고 한다.
‘이상한 존대’의 또 다른 유형은 의존명사 ‘분’의 남용 또는 오용이다. ‘분’은 보통 ‘그분’ ‘저기 계신 분’ ‘손님 두 분’처럼 쓰이는 말인데, 요즘은 아무 데나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얼마 전 프로야구 경기에서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시구(始球)를 해서 구설에 올랐던 여자 연예인은 “(옷을 준비해 준) 스타일리스트분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은 마땅한 존댓말을 찾기 어려운 모든 직함에다가 ‘분’을 붙인다. ‘매니저분’ ‘코디분’ ‘디자이너분’…. ‘분’이 ‘님’을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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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요즘 TV에서 많이 듣는 단어가 ‘지인(知人)’이다. 지인은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란 뜻이니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명사는 말보다는 글에 많이 쓰이는 문어체의 단어다. 스무살 안팎의 연예인이 TV에 나와 “제 지인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뭔가 격(格)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남자가 자기 아내에 대해 “제 부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고전(古典)과 현대문학은 물론 신문도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에서 어법을 배운다. 이 세대는 많은 사람이 쓰는 말을 올바른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TV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개그맨도 좋고 아이돌 그룹도 좋으니, 맞춤법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형식은 능력 있는 프로듀서들이 잘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겨루기’ 같은 고상한 프로그램보다는 강호동이나 유재석이 등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TV는 엉터리 어법을 출연자들의 말과 자막으로 전파한 잘못도 있으니, 이를 바로잡을 책임도 있지 않은가.
글·한현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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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