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패티김은 휘트니 휴스턴의 오랜 팬이다. 휘트니 휴스턴과 스물다섯 살 차이로 거의 딸뻘이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 한동안 휘트니가 활동하지 못했을 때 컴백하기를 학수고대했다고 한다. 패티김은 실제로 2010년 휘트니 휴스턴 내한공연 때 맨 앞자리 티켓을 샀고, 공연장에서도 신이 나서 환호하고 따라 불렀다.
나이 든 은발의 관객이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게 신기했는지 휘트니는 앞으로 나와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돌아서서 모습을 보여주라고 요청해 패티김이 돌아섰더니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졌다. 둘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패티김은 “아마도
휘트니는 내가 가수인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당시 휘트니가 전성기의 목상태가 아닌 데다 이날 감기에 잔뜩 들어 제대로 노래하지 못하자 공연 내내 가슴 졸이며 봤다고 한다.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전성기 때의) 소리가 나오지 못하면 가수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 심정은 임진모씨 같은 평론가는 몰라요. 노래해본 사람만이 그걸 알지요. 저도 무대 나가기 전에는 항상 거울 앞에 15분 서 있는데 불안해서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제발 지진이라도 나서 공연이 취소되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부지기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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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아침 휘트니 휴스턴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순간 전 세계의 음악팬들은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은은하게 퍼져가다가 고음으로 치솟으며 시원한 맛을 주는 그 절창을 더 이상 못 듣는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인이 약물중독이든, 신경안정제를 술과 함께 복용해서였든, 심장마비나 색전증이든 우리가 매직 보컬, 세기의 가창, 사상 최고의 보이스를 잃은 것은 분명하다.
패티김은 휘트니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 3일이 지난 후 그는 가수 은퇴 선언을 했다. 아직도 노래할 수 있는데 은퇴를 결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이가 들면 성대도 늙는다는 진리를 알기에, 미련은 남지만 노래를 잘할 때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판단 아래 용단을 내렸고 실은 10년 전부터 고려해왔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의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예술가의 순수 욕망일 것이다. 은퇴 기자회견장에도 자신의 히트곡 제목을 빌린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표현이 내걸렸다. 은퇴 전국순회공연의 타이틀도 ‘이별’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휘트니 휴스턴과 이별했고 패티김과도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한꺼번에 글로벌 스타, 그리고 한국의 별과 헤어지게 된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음악적 공유점이 있다. 둘 다 성인층에게 호소하는 이른바 스탠더드 음악을 한다. 패티김은 트로트와 신민요만이 있던 1960년대에 서구적 세련미를 더한 스탠더드 음악을 국내에 소개하고 꽃피운 인물이다. ‘한국에서 자신이 상류층이라면 좋아하는 가수는 패티김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휘트니 휴스턴도 팝 메탈, 마이클 잭슨의 흑인 댄스음악, 유투(U2)의 록이 판도를 장악한 1980년대 중반 기성세대가 마땅히 들을 음악이 없던 시절에 스탠더드 음악을 들고 등장했다. 1988년 4월 빌보드 싱글차트 사상 최초로 7곡 연속 1위를 기록하는 수퍼스타덤이 연출됐다. 이후 나온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을 비롯한 디바는 모두가 휘트니 휴스턴에게 빚진 가수들이다.
위대한 목소리를 상실하고, 화려하게 무대를 휘젓는 모습을 더이상 못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남긴 명곡들은 수두룩하다.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나 ‘사랑은 생명의 꽃’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팬들의 기억과 역사의 기록이 있어 음악은 음악가의 짧은 생을 넘어 불사, 불멸한다.
글·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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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