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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근래 들어 알게 된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보회’에 관한 일이었다. 지난 세기 후반의 이야기다. 서울의 여항(閭巷) 어디에 바보회가 있었으니 모임의 좌장은 또렷한 눈빛과 재빠르고 재치있는 언행으로 알려진 시인 S였다. 바보회에 입회하려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기존 회원들 앞에서 바보회에 들기를 원하는 사람이 일생일대의 바보짓을 고백하고 회원들이 그에 응해 “거 참 바보짓일세”라고 끄덕이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유명 건축가 J가 입회를 청했고 신입회원 심사를 위한 모임이 이루어졌다. J는 최근 자신이 설계해 준 소설가 H의 집이 두채로 이루어졌고 두 채 사이는 낭하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집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낭하와 건물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빗물이 새기 시작했고 스며든 빗물로 집 두 채의 천장에 곰팡이꽃이 잔뜩 피었다고 고백했다.

회원들은 그게 무슨 바보짓이냐고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집이란 게 건축가가 설계한 대로 되는 게 아니고 시공업체, 사람, 기후변화, 불운 등 무수한 변수가 개재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한순간 입회를 거절당할 위험에 처한 J는 비교적 근래에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는 평소에 포장마차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들에게 뭔가 유익한 일을 해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 당국에서 불법 포장마차를 일부 양성화하면서 디자인을 새로 공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J는 즉각 설계에 착수해 튼튼하면서도 아름답고, 특히 천둥과 비바람 속에서도 빗물이 절대로 새지 않도록 지붕을 보강한 이상적인 포장마차를 설계해 출품했다.

그의 설계안은 시 당국의 심사를 통과해 포장마차를 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무상으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그 설계안대로 포장마차를 만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너무 장려하고 이상적인 설비를 많이 갖춘 나머지 그 포장마차가 굴러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이런 고백을 다른 사람에게 할 줄 몰랐다는 J의 마지막 말을 들은 바보회 회원들은 박장대소하면서 그의 입회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바보회에서는 건강관리와 체력증진을 위해 회원 전원이 참석,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연락을 맡은 신입회원 J는 등산 날짜가 명절 연휴 첫날인 데 대해 좌장 S에게 연유를 물었다. S의 대답은 “그러니까 바보회지”였다.

J는 회원 모두에게 연락을 취했고 모두로부터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 오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당일이 되어 약속장소에 나간 J는 S 말고는 아무도 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경악했다. 가장 오래도록 모임에 참석해 왔던 S는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자 껄껄 웃으며 “야, 이거 우리가 오늘 제대로 바보짓을 했네. 이제 우리 두 사람으로 바보회 안에 상바보회를 하나 더 만들까나?”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상황은 이와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그 모임의 한때를 갑갑한 현실의 숨구멍으로 삼았다는 것, 나아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세상 사람들의 숨구멍이 되어주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보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한동안 머리속으로 청량한 바람이 드나드는 듯 시원했다. 지금의 인간세상에 또 어디 바보처럼 비어 있는 곳은 없을까?

글ㆍ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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