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포퓰리즘(Populism)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현재 이 용어는 ‘인기영합주의’로 해석되고 있는데, 직역하면 ‘대중주의’, ‘평민주의’, ‘인민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풀이된다. 아직 적당한 번역어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이 개념의 실체는 영국의 복지제도, 아르헨티나의 페론정부 시절의 정책, 1940년대 미국 민주당이 내건 정치용어였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식 양당 구도에서 이 포퓰리즘은 민주당의 서민과 내수경제를 위한 정책으로 대변된다. 할리우드 영화의 역사에서 포퓰리즘은 영화의 전성기와 때를 같이하여 많은 미국영화의 걸작들이 이러한 경향을 띠고 있어 무시하기 어렵다.
할리우드 영화는 1930년대 내내 대공황에 시달려 가난에 허덕였다. 민주당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후 4선을 하면서 미국은 재건의식에 몰두하게 되고 경제불황을 이겨내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미국민을 위로하면서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준 서민 드라마가 ‘포퓰리즘’ 영화들이었고 그 영화들에서 탄생한 영웅들은 ‘서민영웅’들이었다. 포퓰리즘 영화에는 하나의 이야기 공식이 있었고 판에 박힌 주인공이 있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타운 3부작’을 보면 그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디즈씨 도시에 가다 (Mr. Deeds Goes to Town)>, <존 도우를 만나다 (Meet John Dow)>.
스미스(제임스 스튜어트)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수도인 워싱턴에 입성해 정치가의 꿈을 키운다. 당시 워싱턴 정계는 두 파가 복잡한 계파 갈등을 겪고 있었다. 스미스는 그중 한 계파에 고용되어 정계에 입문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이용당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아는 순간 스미스는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스미스는 끝까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저지함으로써 보수정치를 압박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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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3부작’의 공통점은 시골의 정의로운 서민이 대도시로 진출해 도시의 부패한 면을 일신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줄거리는 우화적인 은유로서 부패한 도시는 타락한 미국 정치계와 중산층을 암시하며 서민영웅의 승리는 민주당의 친서민정책을 반영한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 영화의 패러디는 <데이브>(1993)라는 영화로서 나타난다. 현 대통령의 유고가 발생하자 허수아비로 한 시골뜨기를 내세운 부패한 정부관료들이 나중에 그 허수아비 서민에게 뒤통수를 맞는다는 코미디다. 결국 서민의 이미지로서 대중에게 환영받아 진정한 대통령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미국영화는 정치적으로 보면 항상 공화당 계열의 영화와 민주당 계열의 영화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그걸 한국의 보수, 진보와 같은 이분법으로 나누는 건 곤란하다. 서로 다른 역사적 길을 걸어온 두 나라의 정치성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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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