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독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오늘날… 우리 시대 큰어른의 가르침의 독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얼마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예상 외로 많은 트위터리안이 ‘리트윗’(해당 글을 자신의 트위터 친구들에게 알림)을 해주었다. 독설에 대한 피로감의 방증일까. 이제 독설가는 ‘공급과잉’이다. 유사 이래 최고라 할 만큼 이곳저곳에서 독설의 대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포털사이트 인터넷 검색창에 ‘독설’이라고 입력하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가 올라온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가수, 개그맨, 연기자 등 주로 연예인들에게도 ‘독설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독설은 요즘의 대세와 잘 맞는다. 솔직해서 시원하고, 권위를 부정하거나 정곡을 찔러서 재미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TV나 인터넷 등 대중매체는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시청자는 즐겁게 소비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독설은 기본적으로 독성이 있는 말이다. 이는 마치 독약과도 같다. 어떤 독설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공격성과 파괴력을 갖고 있다. 물론 독 중에는 약이 되는 독이 있다. 봉침처럼 미량의 벌독은 관절염에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치료를 위해, 오랜 임상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책임하에 시술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독설도 마찬가지다. 독한 말을 굳이 해야 한다면, 목적부터 분명해야 한다. 살다 보면 자식이나 친구 등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쓴소리를 꼭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애정이나 열정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독설을 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로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가 가진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독설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할 것인가도 고심해 봐야 한다. 초등학생에게 고등학생 수준의 독설을 한다면 그건 이미 ‘막말’이다.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습관적으로 하는 독설은 괴롭힘일 뿐이다.

독설과 막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경계가 무척이나 모호하다. 그러나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말일수록 대중은 열광한다. 때문에 독설은 가면 갈수록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그걸 보고 웃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미량의 독에 이미 중독돼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글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