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유선 인터넷을 관리하는 통신사들은 사용요금이 정액제인 상황에서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전력 조절 실패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듯이 트래픽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면 인터넷도 끊겨 IT 생태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이라도 한 아파트 단지에 스마트TV가 여러 대 있으면 다른 가구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상위 10퍼센트의 극단적인 트래픽 유발자들 때문에 무한정 망을 늘릴 수도 없다.
수혜자 부담 원칙으로 많이 쓰는 사람들이 돈을 더 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논의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그것은 ‘망 중립성’이란 원칙이다.
인터넷 사용 초기 미국에서는 연결을 원하는 대학이나 기업이 스스로 선을 깔아 인터넷에 연결했다. 서로 평등한 조건이기 때문에 그들 간에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일반 사용자를 위해서 망을 깔아주고 사용료를 받는 통신사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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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포털과 같은 생산자, 중개자인 통신사, 그리고 소비자인 사용자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여전히 네트워크를 무료로 썼지만 사용자들은 통신사에 월 사용료를 내는 형태였다.
한때 미국의 포털들과 통신사의 갈등이 있었으나 “생산자는 인터넷을 무료로 쓰고 지나가는 데이터는 간섭받지 않는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확립되었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망 사용료 걱정 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면 이것을 보기 위해서 더 많은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생산자를 장려할수록 이익이 되는 것이다.
망 중립성은 이렇게 관계자들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구조가 왜곡되고 말았다. 통신사들이 사용자뿐만 아니라 생산자인 포털들에게도 망 사용료를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던 통신사는 영세한 인터넷 업체 즉 생산자에게도 망 사용료를 받음으로써 한국 인터넷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한때 동영상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많은 업체들이 등장했지만 사용자가 늘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네트워크 사용료를 감당할 수 없어 거의 다 파산하고 말았다. 반면에 유튜브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동영상 업체가 사라진 한국 시장을 미국의 유튜브가 잠식해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유튜브 서버가 미국에 있어 한국에서 사용하기에는 속도가 느렸을 뿐만 아니라 비싼 국제회선 사용료도 부담이어서 유튜브가 스스로 한국에 서버를 두기로 하고 통신사에게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망을 무료로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통신사들은 한국 기업들에게
사용료를 받는 관행에 방해가 될까 봐 유튜브의 요구를 거절했다.
한국은 TV 강국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차세대 스마트TV 전쟁이 한창이다. 구글과 애플은 각각 구글TV와 애플TV로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스마트TV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유통 방식의 실험이 필요하다.
한국 내에서 다양한 기술이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승리한 기술만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이 실험을 막는 바람에 국가경쟁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통신사들이 스마트TV를 견제하는 이유는 자사의 IPTV 때문이다. 수조원을 들여서 전용망을 구축한 IPTV는 스마트TV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손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스마트TV의 접속을 차단한 것은 통신사 입장에서 절박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TV와 IPTV가 서로 상생하지 않으면 둘 다 살아남을 수 없다. IPTV 망을 개방하여 스마트TV에서 IPTV의 실시간방송을 원활하게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스마트TV에서 IPTV의 유료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콘텐츠 유통망을 개방하여 더 많은 콘텐츠가 소비되도록 함으로써 수익 분배를 통해 조기에 흑자를 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신사와 제조사가 스마트TV 문제 해결에 나서 국내 정보통신기술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한 것은 진일보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와 생산자들이 상생함으로써만 국가경쟁력을 기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망 중립성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논점은 크게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생산자가 망을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산자들이 무조건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통신사들이 생산자들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바뀌어야 한다. 동영상 서비스,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 망 무료에 기반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서비스들이 한국으로 침투하고 있다.
하지만 망 중립성은커녕 망 사용료 내기에 급급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그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망 중립성은 이렇게 한 국가의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통신망 증설이 어렵다면 물리망을 분리해서 공기업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이 어렵다면 망 증설과 유지를 위한 비용은 당연히 사용자들이 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용한 만큼 돈을 내는 인터넷 종량제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동의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태까지 통신사들이 사용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무심했기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다.
통신사는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이익을 주주 배당으로 돌리기보다는 망 증설에 투자해야 한다. 이렇게 해결책을 스스로 강구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일 때에만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글·김인성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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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