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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소설가 조경란의 ‘엄마에게 쓰는 편지’



 

늘 엄마한텐 유독 무뚝뚝하고 쌀쌀맞고 잔소리만 해대는 제가 오늘은 엄마께 이런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는 제목을 붙인다면 언제나 ‘버릴 것 없는’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버릴 것 없이, 언제나 온전한 사랑을 주는.

엄마, 며칠 전에 저에게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 액자 해서 걸어놓고 싶다고 하셨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가 좋아하던 시. 저는 갑자기 엄마가 왜 그 시 이야기를 다시 하나, 생각해봤어요. 어쩌면 엄마는 이미 알고 계신 것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은 즐겁지만 다시 슬픈 일과 어려운 일이 오리라는 것. 그래서 오늘같이 이 즐거운 추억의 힘으로 어렵고 슬픈 일들을 건너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이미 엄마는 알고 계신 거겠죠. 그 시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엄마. 몇 년 전, 그 겨울밤, 기억하세요? 엄마가 성인이 된 저에게 처음으로 호통이란 걸 친 날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해요. 너무 오랫동안 글이 안 써져 좌절에 빠져 있던 제가 밖에서 술에 취해 들어간 날이었어요. 가족들은 다 잠이 들었고 엄마와 저, 이렇게 둘이 식탁에 마주앉았어요.

그날 제가 엄마에게, 적어도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아픈 말을 했죠. 저는 말했어요. “엄마, 내 인생은 실패했어”라고. 아직도 그 문장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그렇게 말해버리자 정말 그게 사실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와락 몰려왔어요. 저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고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엄마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좋은 날이 올 거야. 기운 내. 넌 꼭 좋은 작가가 될 거야!”

그렇게 저를 단호한 소리로 야단치고 간절히 저를 설득시키는 엄마를 보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때 엄마 호통 소리가 제 정소설가 조경란 씨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지지가 없었다면 소설가의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10·05·12 공감수리를 세게 후려치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한 사람처럼 보였고 저는 그 말에, 엄마의 그 바위 같은 모습에 기대고 싶었어요.

그 후로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요. 드물지만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있었어요. 엄마, 그날 제가 엄마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 사과드릴게요. 누구도 실패한 인생은 없을 거예요. 단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이 있을 뿐. 자랑스러운 엄마의 딸로서, 저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거예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엄마,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 고마워요. 제가 작가가 된 것은 전적으로 가족들 덕분입니다.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 한 채 이십대를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낼 때, 그때 정말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때인데도 불구하고 맏딸인 저에게 직장에 가라, 남들처럼 좀 살아라, 아무도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하시고 묵묵히 지켜봐주셨지요.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오직 책만 읽었던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 이렇게 작가가 되진 못했을 거예요. 다른 삶을 살았을 거예요. 불행하진 않아도 지금처럼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그런 삶을. 저라는 한 사람은, 제가 본 것, 제가 경험한 것, 제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 사람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것이 더 있어요. 저라는 사람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선배 여성작가들이 그런 농담을 해요. 세계적으로 위대한 ‘여성’작가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옆에서 아내처럼 밥을 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매일매일 정성껏 밥해주시는 엄마 때문에라도 꼭 좋은 작가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약속드릴 수 있어요.

엄마. 이것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배운 언어입니다.

올해는 어버이날이 바로 엄마 생신이군요. 가슴에 카네이션 꼭 달아드릴게요. 카네이션 꽃말은 존경과 사랑입니다. 집은 우리가 그저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 하지요. 제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인 나의 집. 그 중심에 늘 ‘어머니’가 계시기를, 언제나 기원합니다.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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