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직립보행은 인류 최초이자 최후의 꿈이다. 걸어서 간다는 것은 조금 느리고 힘이 들지만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의 지름길은 없다. 인간은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했지만 단 하루, 단 한 걸음이라도 걷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고,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할 수도 없다.
다만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바퀴 없이는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나약함에 길들여졌을 뿐이다.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사랑하는 그대에게 갈 수 없다’거나 ‘자동차가 고장 나 갈 수 없다’는 엄살은 그 얼마나 부끄러운 논리이자 핑계인가?
인간은 직립보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네 다리 중 과감하게 앞다리 두 개를 버렸다. 아니, 버린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날개로의 진화를 포기하고 두 손을 선택한 인간의 탁월한 안목이었다. 마침내 손과 발의 역할 분담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날마다 모든 길을 걸어서 갈 수는 없지만, 이따금 직립보행의 초심으로 돌아가 단지 목적으로서의 한 송이 꽃보다 꽃을 피우는 과정으로서의 행복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욕망의 무한질주’에 차멀미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오직 걷는 것으로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걷는 것이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 한 번쯤 쉬어야 하는 길이 10리 길이고, 종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바로 100리 길이라는 것을. 이는 사람만의 기준이 아니다. 봄날의 꽃이 피면서 북상하는 속도가 그러하고, 가을에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가 그러하다는 것을 걷고 걸으면서 알게 됐다. 사람의 속도와 자연의 속도가 모두 한걸음, 한호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은 걸어서 가는 것이다. 물론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목적지에 훨씬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지에 왜, 무엇 때문에 가는지 깊이 생각해 보면 빠르다는 것은 아무래도 대충 가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차를 몰고 경적을 울리며, 붉은 신호등에 가슴을 치며, 끼어드는 다른 차들에 욕설을 퍼부으며 허겁지겁 간다면 그것이 어찌 제대로 가는 길이며, 그렇게 만난들 그 무슨 사랑이 새록새록 샘솟겠는가? 차를 타고 수백 번 가는 것보다 고해성사하듯 한 번이라도 걸어서 가 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 아닌가?
도인들의 축지법이나 비보(飛步)를 별로 믿지 않지만, 오래 걷다 보니 알겠다. 길가의 풀이며 지렁이며 나무며 꽃을 바라보며 걷다 문득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아득해진다. 마치 날아온 것 같다. 축지법이나 비보는 단순히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경지였다. 내가 태어나 40년 동안 걸은 것보다 지난 한 해 동안 더 많이 걸었으니 40배나 더 빠른 축지법이나 비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발바닥이 곧 인간의 날개인 것이다.
인류의 ‘오래된 미래’인 직립보행의 꿈을, 날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완성하는 유일한 행동이 바로 걷는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천천히 걸어서 가자. 그곳이 멀지 않다. [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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