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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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의 고향 경북 문경을 찾았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문경새재의 주흘산은 여여한데, 어느덧 내 나이는 일찍 가신 아버지를 따라잡았습니다.
세월이라는 기차는 아직 어린 나를 태우고 철커덩 철커덩 세상 밖으로 나가더니, 문득 이렇게 두서없이 돌아와 구랑리역에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구랑리역, 점촌역발 가은행의 마지막 간이역이자 소년기에 머물던 내 인생의 간이역.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지 이미 오래여서 레일은 녹이 슬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태어나는 신생의 아이들도 더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철길 위에 엎드려 녹슨 레일에 귀를 대보면, 어느새 추억 속의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힘차게 기적 소리를 울리며 철교를 건너 코뿔소처럼 달려오고 있습니다. 기차는 하루에 여섯 번밖에 서지 않았지요. 새벽기차와 아침저녁의 통학열차, 점심 무렵의 왕복열차, 그리고 밤기차가 전부였지요. 구랑리 사람들의 일상은 첫차의 기적소리로부터 시작해 막차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면서 끝이 났습니다.
기차는 통학이나 장을 보러 가는 교통수단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이 마을의 시간을 지배하는 시계이자 바깥세상의 소식과 풍문을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였지요.
내 기억 속의 구랑리역은 초등학교 시절에 한해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구랑리역 앞 ‘작약꽃밭의 악동’으로 말입니다. 어머님이 기차역 주변 600여 평의 밭에 작약을 심어놓았는데 해마다 봄이면 그 작약꽃밭이 장관이었습니다. 당연히 여고생들의 주요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말하자면 나는 누나들이 흠모하는 국어선생님께 바칠 꽃들을 지키는 이른 아침의 ‘꽃지기’였던 것입니다.
기차가 머무는 30초 동안, 여고생 누나들이 우르르 몰려와 순식간에 꽃을 꺾어 다시 기차에 오르면 나는 분을 참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내가 늦잠을 잔 날이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참매 ‘벼랑이’를 어깨에 앉히고 송아지만한 ‘불개’를 꽃밭 주변에 풀어놓은 채 통학기차를 기다렸지요. 누나들은 감히 기차에서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차창을 열어 내게 미인계나 껌 등의 물량공세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고 모두에게 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야, 작약꽃밭의 악동! 한 송이만… 선생님 드릴 거야.”
“안 돼, 누나는 안 돼. 저번에도 훔쳐갔잖아! 오늘은 저기 저 예쁜 누나 줄 거야.”
이렇게 나는 아침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누나 한 명을 골라 미리 준비해둔 꽃다발을 차창 너머로 전해주곤 했습니다. 매일 바뀌는 주인공 누나와 작약꽃 한 다발이 날마다 통학열차를 달리게 했지요.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열두 살이 되기도 전에 여고생들의 ‘스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잠깐 기차가 머무는 구랑리역의 봄날 아침, 나는 ‘헌화가’ 속의 늙은이가 아니라 아직 사춘기도 못된 애송이가 되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작약꽃밭의 악동’입니다. 아니, 언제까지나 지리산 야생화를 지키는 악동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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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